김정자(시인·수필가)
어느 덧 4월도 끝이 보인다.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봄이 익어가고 있는 와중에 봄의 몸부림도 밀물처럼 밀려들었는데 이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4월은 날씨가 맑고 밝다는 뜻에서 유래한 ‘청명’과 봄비가 내려 백곡이 윤택하다는 ‘곡우’ 절기가 4월에 담겨 있다. 봄을 뜻하는 영어 ‘April’ 은 열리다 라는 뜻에서 내력 하는 라틴어 ‘Aperier’에 기원을 둔 단어로, 대지 위의 만상에 산천 초목이 움이 트고 새 순이 열리는 달을 의미 한다. 4월에는 우리 고유의 한식과 단오 절기가 있고 식목일, 지구의 날이 포함된 달이다. 1545년 4월 28 일은 충무공 이 순신 장군의 탄신 기념일은 경축할 만한 일로 기억되지만 아픈 기억의 장에 남겨진 일들이 비교적 많은 4월이다. 봄의 전령인 꽃 소식이 찾아오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많은 시련과 아픔이 고여 있다.
1865년 4월 15일에 링컨 대통령 암살 사건과 1912년 4월 15일,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이 있었고, 또한 1948년 4월 3일에는 제주 4.3 사건이 발생했다. 1960년 4월 19일에는 4.19 민주 혁명이 발발했으며, 2014년 4월 16일 에는 세월호 침몰사건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아픔이 덧나 듯 지울 수 없는 기억의 장에 남겨져 있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은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 4월은 ‘잔인 한 달’이라 표현 했다. 4월이 오면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만우절의 가벼운 발걸음도 잠시, 진중한 4월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렇 듯 격동의 사건과 비극적인 사고가 많았지만 소멸과 소생의 기적을 세상 기쁨과 구별 된 엄중한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소중한 계절로 다른 계절이 감히 나설 수 없는 12달 중 가장 거룩함으로 경건하고 장중한 4월이기도 한 것은 창조주의 사랑을 십자가 사랑으로 승화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이 바로 4월에 자리매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메마른 현실로 찾아 오셔서 가슴을 적셔 주시며 위로와 소망을 갖게 해 주신 4월이다. 꽃과 꽃들이, 금방 솟아난 듯한 연 록의 잎들이 천지를 뒤덮고, 다사롭게 햇살 가득한 4월이 싱그러운 선물과 같은 계절이다. 겨울을 지나 4월의 문턱에서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삶의 희열이 세상을 다 아우를 듯한 향기로 밀려든다. 자연의 미물마다 새로운 생명의 아름다운 존재 성을 위해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엄동설한도 함부로 4월을 건너 본 적이 없었다.
4월이면 꽃들은 이미 낙화를 서두르고 연 록의 잎새가 움을 틔울 자리를 양보하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기약하 듯 아쉬움 없이 떠난다. 겨울 내내 대지가 준비해 왔던 저들의 끼와 역량을 한바탕 마음껏 펼치려는 4월 축제 마련을 위해 옹골차게 준비해 왔던 것을. 나무 마다 싹이 움트고 자라고, 대지는 뿌리내린 나무들을 군말 없이 키워내고 새 생명은 대지를 의지하며 생명줄을 붙들고 있다. 4월 훈풍과 향기는 자연이 베풀어주는 최상의 선물이다. 하지만 세상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갖가지 소음으로 가득하다. 어찌 보면 살아 움직이려는 경쟁 구도의 생존 본능의 몸부림들이 되려 누군가의 삶을 불안이나 절망감으로 고통을 주는 일들 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니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 사람 사는 세상인데 사회의 기본인 대지 같은 세상 풍토가 어찌 이리도 뒤틀려 있을까. 양날의 칼처럼 서로 다른 두 모습이 존재하는 것이 세상이요 희망에 들뜬 4월의 또다른 두 모습이기도 하다.
젊었을 그 땐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에 공감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깊어 갈수록 생명을 움 틔우는 축복과 은총의 달이라는 말이 더 따스하게 다가온다. 이 역시 4월의 두 얼굴이다. 나무 마다 연 록의 새 잎이 움을 틔우고 대지는 겨울이 남긴 차가운 기운을 몰아내고 들판 가득 푸른 물결을 덧입히고 있다. 침묵으로 봄 날의 아름다움을 충동질하는 봄날 하늘도, 봄 기운에 덩달아 괜스레 분주해 보이는 대지에도 천지 간에 온통 꽃잎이 벙그러지고, 4월을 목청껏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한껏 익어 가는데, 한 순간 낙화의 서러움에도 마음이 쓰이는 4월의 또 다른 옆 모습이 유난해 보이기도 한다.
4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소생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쇠잔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었다. 잔인한 봄 잔치가 처처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날카로운 꽃샘 바람을 견뎌낸 환희의 기쁨도, 표현할 수 없는 생명 공감까지도 모두 4월에만 존재하는 기쁨이라서 한 해 열 두 달이 4월 만 같기를 의식 속에 수용하며 각인해 두려 한다. 4월에 머물고 싶다는 직설을 유보하며. 겨울을 흉내 내기도하고 여름으로 달려가기도 하는 4월의 두 모습을 보며 이래저래 생각도 많아진다. 싫은 일, 덮어두고 싶은 일 들이 누적되는 계절임을 절감하게 된다. 실없는 말 들이 난무하고 돌아서면 가짜 뉴스라 우겨대는 세상이지만 작은 꽃 한 송이 피워 내기를 기다리며 양지에 꽃씨를 심으려 한다. 세상이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의 깨달음에 이르기를 기대하 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