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영국의 여류시인, 박애주의자 애들레이드 앤 프록터(Adelaide Anne Proctor)는 “지금 이 시간,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멀리서 당신을 생각하며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사랑의 존재에 대해서 강력하게 피력합니다. 왜 이와 같은 <비상사태(Emergency)>를 일깨우고 있을까요? 그 이유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고통(Wound)>이 원인자입니다.
세상의 삶을 여기에 적용하면 <고통받고 있는 세상>에, 이 시대상황에 적용하면 <고통받고 있는 시대>로, 그리고 가장 직접적인 적용으로 개인에 대하여 적용하면 <고통받고 있는 개인>입니다. 십자가에서 고통받고 죽으신 예수님은 이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세상과 시대와 개인>을 결코 추상적이나 즉흥적인 공감으로 이해하신 것이 아니라 대속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 우리 대신 이 모든 고통을 몸소 겪으시므로 진실로 체휼(Sympathy)하신 분이십니다(히 4:15).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얻은 상처는 세상과 시대와 개인 모두를 치료할 수 있는 중요한 치유의 원천이 됩니다. 시인 프록터가 준 사랑의 잠언처럼 고통받고 있는 세상, 시대, 개인을 향하여 잠언의 메시지를 통하여 절체절명의 지혜를 주십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6).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고통의 원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불멸에 대한 추구>에서 오는 복합적인 것들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로버트 리프톤이 지적한 대로 “불멸의식의 위협이야말로 현대를 사는 인간이 당면한 핵심문제”인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다양한 삶의 요소들로 인하여 시간과 공간을 망라하여 지속되기를 바라는 <강력하면서도 보편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근본적인 삶의 <탐욕적인 욕구>가 해소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새로운 형태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21세기의 현대인들이 겪는 <내면적인 고통>인 것입니다. 이 고통에 대하여 시인 프록트가 지적한 대로 고통하는 현대인을 향하여 “누군가가 멀리서 생각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굿뉴스입니다. 이 굿뉴스를 잠언의 말씀에 내재하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환대적인 용어>로 말하면, <은혜와 도우심>입니다. <은혜와 도우심>은 하나님만이 부여하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현대인들이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새로운 불멸의 추구뿐만 아니라 살면서 겪는 순간순간의 고통들을 너무나 잘 아시는 <상처입은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현대인의 극심한 고통의 민낯을 잠언의 말씀은 총체적 연약함(Total Weakness)과 불가피한 무기력(Inevitable Lethargy)이라 일컫습니다. 그래서 고통의 원인자인 총체적 연약함과 불가피한 무기력의 최고의 해결책으로 <전적 신뢰(Total Reliance)>와 <보장된 약속(Guaranteed Commitment)>의 하나님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6). 우리에게 상처입은 치유자 예수님을 허락하셔서 진실로 우리의 질고를 체휼케 하심으로 우리가 고통으로 인하여 괴로와 낙심하고 절망할 때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가까이 오셔서 그 무거운 짐을 맡기라 하시며 사랑으로 날마다 매 순간 사랑의 은혜와 도우심을 베풀어 주시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도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은혜와 도우심>을 겸손히 구하오니 허락하여 주옵소서. 상처입은 치유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