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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의 독서칼럼] 곰이 산을 넘어오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3-21 1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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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여류 단편소설 작가 엘리스 먼로가 2024년 5월 사망했다. 1931년 태어난 그녀는 10대 소녀 시절부터 시작하여 절필을 선언한 82세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단편 소설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사망하기 10년쯤부터는 치매를 앓다가 양로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작품 중에 곰이 산을 넘어오다(The bear came over the mountain)가 있다. 여자관계가 복잡하여 일찍 은퇴한 전직 교수인 남편 그랜트와 치매를 앓게 된 부인 피오르의 이야기다. 젊었을 때는 삶의 불꽃이었던 여인이었으나 일흔 살이 되어서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주방 서랍마다 메모를 붙이고, 이미 죽은 반려견이 어디 갔나, 찾기도 한다. 일 년쯤 지났을 때, 슈퍼마켓에서 사라져 밖에서 헤매고 난 후 그녀는 양로원에 갈 것을 결심한다. 

입원하고 한 달 후, 면회가 허락됐다. 남편은 설레는 마음으로 꽃다발을 들고 부인을 만나러 간다. 그녀는 어떤 남자의 옆에 앉아 카드 게임을 도우며, 온 마음을 쏟고 있다. 부인은 남편을 보고 매우 상냥하게 말하지만, 남편으로 알아보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계속 형식적으로만 친절하게 대하는 부인을 보는 남편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양로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부인의 머리 모양도 입은 옷도 점차 다른 사람처럼 변해간다. 잠시 입원했던 그 남자가 퇴원한 후, 부인은 상실감으로 우울증에 빠진다. 

음식을 안 먹고, 운동도 하지 않아서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남편이 그를 데려오려고 찾아 나선다. 그 남자의 집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그의 부인이 집에서 돌볼 수밖에 없다. 그랜트와 그 부인이 만난 후, 서로 마음이 끌리는 걸 느낀다. 결국 그 남자를 양로원에 데려오지만 부인 피오르는 그를 잊은 듯 관심이 없고, 남편을 알아본다. 그녀의 정신은 그렇게 멀리 갔다가, 아주 가끔 돌아오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치매를 겪는 부인과 그녀를 지켜보며 살아가는 남편, 그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의 음성을 따라가며 슬프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 인생의 여정을 봤다.

제목은 왜 <곰이 산을 넘어오다>일까, 궁금했다. 그 말은 본문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제목에 대하여 작가는 알츠하이머를 인생이라는 산에서 갑자기 내려오게 되는 곰에 비유하기 위하여 상징적인 제목을 붙였다고 했다. 원래 아이들이 즐기는 노래 -곰이 산을 넘어갔다< The bear went over the mountain>이 있는데 날씨가 좋으면 곰이 은신처를 부숴버리고 산을 넘어가고 눈비가 오면 은신처로 돌아와 숨는다는 게르만족 전설에 유래한 노래라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가다’를 ‘오다’로 바꿨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가 있다. 줄리 크리스티가 부인 역을 맡았다. 책으로 읽었을 때의 막연한 이미지가 영화로 보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심중에 다가오는 것 같다. 제80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고 흥행작이 되었다. 유명한 비평 중에는 ‘이 영화의 여주인공 피오나의 알츠하이머병이 남편의 간통에 대한 복수라는 사실이다’라는 논평이 이 영화를 돋보이게 했다고 한다. 

 그 논평을 보며, 과연 그런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남편이 고통을 받게 되었으니, 복수라는 것일까? 아니면 의도하지 않았지만, 인생의 결말은 결국 주는 대로 받는다는 것인가. 마음의 상처를 주었으니 대신 비슷하게 돌려받는다는 뜻일까. 50년을 같이 산 부인이 치매를 앓고 있는데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남성의 성정일까? 아니면 부인에게 버림받은 듯한 외롭고 절망적인 마음이 헤매는 것일까? 난 아직도 결론을 낼 수 없지만 좋은 작품은 우리에게 삶의 겉모습을 벗기고, 그 안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직 글을 쓰고 싶은 열정 때문에 6살의 막내를 포함한 어린 세 딸과 남편을 두고 집을 나갔던 작가, 그녀가 치매에 대한 글을 쓰면서 한 어머니로서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소설은 허구이니 인간으로서의 인생과 그의 글을 굳이 연관시킬 수는 없겠지만, 작가는 펜 끝에서 그의 경험과 철학이 묻어나는 것이니, 그녀의 생각을 추측해 볼 뿐이다. 여성이었던 작가가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여 준 인간과 인생의 다양한 모습에 감탄하며 감사한다. 

<한 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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