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인생의 사계절 중 중년기 그 중에서도 남성의 중년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중년을 묶고 있는 몇 개의 사슬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정체감의 혼란입니다. 중년기는 흔히 제2의 사춘기라고 해서 “사추기”라 부르기도 합니다. 사춘기와 사추기는 여러 가지 유사성이 있습니다. 우선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더 이상 아이도 아니고 또 아직 성인도 아닙니다. 여기에 정체감의 혼란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년기에도 비슷한 문제가 옵니다. 중년은 더 이상 청년이 아니며 아직은 노인도 아닙니다. 따라서 중년기에도 정체의식의 혼란이 오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체의 급격한 변화입니다. 이것 때문에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고 묶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춘기 청소년들은 성장에 따른 신체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지만 중년기는 노화되는 신체의 변화 때문에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그런 것처럼 중년기도 신체의 변화를 강하게 의식합니다. 자신의 육체가 무너져가는 것을 느끼면서 신체에 대한 강렬한 의식을 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중년기의 가장 중요한 신호는 시력 감퇴와 함께 찾아 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 가지 잘 한 게 있는데 책을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이 대표로 책을 읽으라고 시키면 늘 제가 읽곤 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 또박 또박 정확하게 잘 읽었기 때문에 커서 아나운서가 되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된 후에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교인들 가운데 더듬거리며 성동봉독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나이가 45세 되던 어느 날 교회 강단에 서서 말씀을 봉독하려고 성경을 폈는데 순간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몇 절 말씀인지도 왔다 갔다 하고 글자가 분명하지 않아 한참을 더듬었습니다. 그 이튿날 쯤 안과 병원에 가니까 의사 선생님이 악수를 청하면서 축하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뭘 축하 하느냐고 하니까 “매직 스테이지”(magic stage)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고 합니다. 제가 그 뜻을 잘 이해 못하고 매직 스테이지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중년기가 되면 제일 먼저 눈에 시력 감퇴가 오는데 이렇게 어른어른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매직 스테이지라고 부른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슬퍼졌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에 달을 보며 울었습니다. 시력 감퇴 뿐 아니라 근육 무력증, 비만, 당뇨와 같은 병의 위협을 받고 여성의 경우에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폐경기를 겪는 것이 이때입니다. 더구나 요즘 심리학자들이나 정신의학자들의 연구 결과로는 남자들에게도 여자들의 폐경기와 비슷한 그런 정신적 폐경기를 거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중년기의 신체 변화는 몸과 마음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세 번째로 감정의 급격한 변화를 겪습니다. 소년 소녀기는 꿈꾸는 시기라고 일컬어집니다. 모든 소년 소녀는 인생에 관한 한 이상주의자들입니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면 현실이라는 차가운 벽을 느끼게 됩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감정적 좌절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 사춘기를 극복하고 청년기에 들어가면 다시 인생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드리밍 스테이지”(dreaming stage)가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장도 갖고 사업도 시작하고 한참 열심히 달려갑니다. 그러나 나이 사십이 넘어가면서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을 돌이켜보니까 뜻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느낍니다. 중년기에 들어가면서 또 한번 현실이라는 벽을 느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시 좌절을 경험합니다. 이런 좌절에 따르는 여러 가지 감정적인 혼란들, 즉 두려움이나 불안 같은 것들이 발생하는 시기가 바로 중년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