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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여성 자원봉사자들이 전쟁터에서 도넛을 튀긴 이유

미국뉴스 | 라이프·푸드 | 2024-05-17 14:25:36

도넛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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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의 역사

1983년 8월 7일,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였다. 가족은 오랜만에 도넛을 튀겼다. 어머니가 믹스로 반죽을 만들어 얇고 넓게 펴면 초등학생 아들들이 컵과 맥주병으로 동그랗게 떠내는 나름의 협업이었다. 이윽고 다 튀겨 설탕까지 솔솔 뿌린 도넛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경계경보가 울렸고, 곧 공습경보로 전환됐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노래를 부르던 가수 이은하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자막이 흘러나왔다. 아파트에서는 지하실로 대피하라고 방송했다. 혹시 모르니 도넛이라도 가지고 내려가자고 주섬주섬 챙기는데 상황이 곧 해제됐다. 중국 조종사 손천근이 미그21 전투기를 몰고 한국 영공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사진=Shutterstock>
<사진=Shutterstock>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발령된 공습경보였다. 같은 해 2월 북한군의 이웅평 상위가 미그19 전투기를 몰고 귀순했던지라 한층 더 무섭게 다가온 사건이었다. 하필 그때 도넛를 튀겨 먹고 있었던 덕분에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뒤집어 보면 도넛이 그만큼 우리의 식탁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됐다는 방증이다.

40여 년 전에도 믹스로 집에서 만들어 먹었을 정도로 도넛의 역사는 깊다. 밀가루 반죽을 튀긴 음식 자체의 역사가 워낙 깊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잘 알려진 도넛의 역사는 17~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네덜란드인들이 뉴욕(당시 뉴네덜란드)에서 동그랗게 빚은 밀가루 반죽을 튀겨 팔았다.

최초의 도넛은 우리가 아는 고리 모양이 아니었다. 네덜란드어로 '올리코엑(olykoek·기름 케이크)'이라 불렸던 이 음식의 중심부에는 과일이나 견과류가 들어 있었다. 중심부가 가장자리보다 천천히 익는 현상에 대비한 나름의 대책이었으니, 덕분에 이 음식은 19세기 초반부터 영어로 반죽(dough)과 견과류(nut)의 합성어인 ‘도넛(doughnut)'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도넛이 지금의 고리 모양을 갖춘 건 대략 1850년경이다. 일설에 의하면 미국의 선원인 핸슨 그레고리가 반죽을 둥글게 빚은 뒤 가운데에 구멍을 뚫었다고 한다. 폭풍 등 온갖 극적인 요소가 등장하나 아주 정확한 근거는 없어 설에 불과한 이야기이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바뀐 모양 덕분에 도넛은 더 커지면서도 고루 잘 익는 즉석빵이 될 수 있었다.

디자인 업그레이드를 겪은 도넛은 전장에서 맹활약하게 된다. 1·2차 세계대전에서 군인들에게 특식으로 공급돼 사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도넛 아가씨들(Doughnut Lassies)'이라 불린 여성 자원봉사자들의 목숨을 건 맹활약 덕분이었는데, 원래 이들이 처음부터 도넛을 튀길 계획은 아니었다.

■전쟁터 누빈 ‘도넛 아가씨들'

미국은 원래 파이와 케이크의 나라였지만 그 둘은 만드는 데 품이 많이 들뿐더러 장비 또한 적지 않게 필요했다. 따라서 최전선 바로 뒤에서 군을 도와야 했던 여성들에게 적합한 음식이 아니었으니, 그들은 결국 도넛을 대안으로 채택했다. 아주 많은 기름이 필요하지 않고 훨씬 더 쉽게 만들 수 있어 전장의 위문품으로 괜찮았다.

비록 대안으로 채택돼 지급됐으나 군인들은 도넛을 좋아했고 임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찾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고 러시아 피난민 출신인 아돌프 레빗(1883~1953)이 자동 도넛 제조기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이미 비슷한 기계가 등장한 뒤였지만 레빗의 기계는 그것들보다 더 나은 성능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지금까지 맹활약하는 도넛 브랜드가 등장했으니 바로 크리스피크림(Krispy Kreme)이었다. 미국 켄터키주 출신의 버논 루돌프(1915~1973)는 고등학교 졸업 후 어떻게든 도넛으로 자리를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고향인 켄터키와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주 등 남부를 돌며 아버지와 삼촌을 도와 도넛을 만들었다. 그리고 1937년, 드디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윈스턴세일럼에 자신의 도넛 가게를 연다.

원래 루돌프는 소매를 할 심산으로 도넛 공장을 열었다. 그런데 도넛을 튀겨 글레이즈(끈끈한 설탕물)를 끼얹어 완성할 때의 다디단 냄새가 행인들을 자극했다. 행인들은 레빗에게 도넛을 팔라고 요청했고, 루돌프는 결국 길 쪽으로 난 공장의 벽에 작은 구멍을 뚫어 소매도 시작했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크리스피크림 도넛의 시초였다.

1950년에는 도넛 제국 던킨(Dunkin’)이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출신인 빌 로젠버그(1916~2002)는 14세부터 전보를 배달해 돈을 벌기 시작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노동자들에게 간식거리와 음료를 판매하는 일종의 푸드트럭 사업을 시작한다. 사업이 성장하면서 판매액의 40%가 도넛과 커피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는 1948년 ‘오픈 케틀'이라는 전문점을 연다.

승부수는 다양성이었다. 다른 가게들이 고작 다섯 가지의 도넛을 팔 때 로젠버그는 52가지를 내놓았다. 덕분에 장사가 잘되면서 그는 상호를 ‘커피에 도넛을 담가 먹는다(Dunk In)'는 조어인 던킨으로 바꾸고 1955년, 여섯 번째 직영점을 연 뒤 프랜차이즈로 전환한다. 

■한국은 도넛 춘추전국시대

한국 도넛의 역사도 만만치 않다. 오뚜기에 따르면 이미 1970년에 핫케이크 가루와 더불어 ‘도나스' 가루를 출시했다고 한다. 미국식으로 보이지 않는, 튀겨 설탕을 입힌 프리터(fritter)류도 제과점이나 시장의 가게 등을 통해 널리 팔리곤 했다. 꽈배기 등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한국식 도넛의 역사는 자료가 거의 없다. 꽈배기는 중국의 유타오(油條)와 비슷하지만 유타오는 설탕도 묻히지 않고 짠맛 위주의 아침 식사용이라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지금껏 살펴본 양대 미국 프랜차이즈의 국내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일제당이 던킨을 들여오려고 했다가 무산됐고, 1983년에 1호점을 열기는 했으나 1년 뒤 부도를 내고 한동안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10년이나 더 지난 1994년, 배스킨라빈스의 비알코리아와 제휴해 이태원에 다시 매장을 내 오늘날까지 왔다.

이후 던킨은 10년가량 독주하다가 본토의 숙적인 크리스피크림이 2004년에 진출하면서 국내에서도 경쟁하게 됐다. 일설에 의하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외국에서 맛있게 먹었다며 적극 추진해 크리스피크림이 들어오게 됐다. 

요즘 한국은 도넛의 춘추전국시대다. 던킨과 크리스피크림의 양대 프랜차이즈 외에도 2017년 노티드를 필두로 올드페리도넛 등의 국산 개인 매장이 출범해 나름의 자리를 잡았다. 이런 시장의 움직임에 캘리포니아주의 프랜차이즈인 랜디스까지 진출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기본 조리가 비교적 간편하고 빠른 데 비해 맛이 좋은 게 인기와 확장의 비결이다.

 

한국 꽈배기 도넛.          <사진=Shutterstock>
한국 꽈배기 도넛. <사진=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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