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시절 부족·비싼 가격
운전자들 새 대안 급부상
애플이 전기자동차(EV) ‘애플카’ 개발을 포기했다는 소식은 자동차 업계엔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 2014년부터 ‘프로젝트 타이탄’이란 이름으로 완전자율주행 전기차인 애플카를 개발해 왔던 애플이 10년간 공들인 프로젝트를 포기한 데는 전기차 업체들의 마진 압박이 현실화한데다 전기차 시장이 침체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전기차 수요 둔화 현상은 전국에서 전기차 판매를 선도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전기차 판매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2분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3분기와 4분기 연속해서 전기차 판매는 하락세다. 전기차의 빈틈을 하이브리드가 채우면서 판매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전기차 수요 감소에 하이브리드 생산 증대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올해 중반까지 전기차 40만대 생산 계획을 철회하고 향후 전기차 생산 목표를 제시하지 않기로 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오는 2025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50%까지 끌어 올린다는 목표를 5년 연기하고 대신 하이브리드차로 간극을 메꾸겠다고 했다. 포드 역시 향후 5년 동안 하이브리드 생산을 4배 늘릴 계획이고 현대차 그룹도 올해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20만대 가량 늘릴 전망이다.
수요 둔화에 전기차 판매 성장세가 꺾이면서 주춤거리고 있다. 대신 개솔린 내연기관과 전기 시스템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차량이 전기차의 틈새를 파고 들며 대체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에 글로벌 자동차 완성업체들은 ‘전기차 올인’ 전략에서 방향을 틀어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을 대폭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전기차 수요 감소 현상이 두드러진 곳은 가주다. 가주는 미국 내에서도 전기차 보급에 관한 한 선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가주에너지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가주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모두 12만2,387대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3분기에서 들어서면서 전기차 판매량은 11만9,587대로 소폭 하락세를 보이더니 4분기에는 10만3,127대로 급감했다. 2분기 최고치와 비교하면 15.7%나 줄어든 것이다.
전기차의 판매 감소세와는 대조적으로 하이브리드차의 판매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가주신차딜러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하이브리드차 판매 상승률은 3%에서 4분기에는 7.6%로 급상승했다.
거침없이 성장할 것 같았던 전기차 시장이 성장 둔화세를 보이는 요인으로 충전 시설의 부족이 꼽혔다.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충전소가 부족하다 보니 목적지나 충전소에 가기 전에 배터리가 소진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소위 ‘추행거리 불안’(range anxiety)이 판매에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여기에 전기차의 비싼 차값도 한몫했다. 자동차 전문 매체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일반 개솔린 자동차의 신차 가격은 평균 4만8,247달러인 반면 전기차의 평균 가격은 5만2,345달러로 나타났다.
이처럼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하이브리드차 생산 증대로 틈새 시장을 공략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 중 포드는 하이브리드차로 전환에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해 전기차 부문에서 120억달러 손실을 본 포드는 전기차 투자 대신 수익성이 높은 하이브리드차 증산 계획으로 투자처를 변경했다. 독일의 폴크스바겐도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하고 GM 역시 전기차에 집중 투자해 테슬라를 타도하겠다는 전략에서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차 생산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현대차도 하이브리드차 생산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2위에 오른 현대차는 차세대 하이브리드용 플랫폼 TMED-II 개발에 속도를 내는 한편 하이브리드 인기 차종 공급도 확대한다. 이를 위해 2025년 상반기 가동 예정인 미국 내 전기차 전용 공장(HMGMA)의 준공 시기를 올해 10월로 앞당겨 연간 30만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