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불이행·이스라엘 지지 실망”
전통적 지지층 불구 이탈세 뚜렷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든든한 뒷배였던 흑인 유권자가 대거 이탈하고 있다.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불신과 가자지구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편든 데 대한 실망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이탈한 표심이 인종 차별로 악명 높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흘러갈지, 바이든 대통령 측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미국 AP통신은 28일(현지시간) “지난해 11~12월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흑인 성인의 50%만이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다”며 “2021년 7월(86%)보다 (지지율이) 감소한 수치”라고 전했다. 2년 반 사이 흑인 지지층 중 40% 이상이 바이든 지지를 철회한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 흑인 유권자는 25%였다.
2020년 대선 당시에도 흑인 투표층에서 바이든 대통령(87%)이 트럼프 전 대통령(12%)을 압도했지만 흐름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 ‘집토끼’였던 흑인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등 돌리는 주된 이유는 공약 미이행에 대한 불신이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달 “다수 흑인들은 민주당이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한다”며 “저렴한 주택·의료비·학자금 대출 등 문제에 대한 진전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자지구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태도도 변심 원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억압받는 집단’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으로 “흑인과 팔레스타인 사이 강한 연대감”이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대처에 대한 흑인 교회의 실망은 그의 재선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흑인 목사들은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공격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하라’고 바이든 행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흑인 교회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 정치 공동체의 구심점이다.
위기를 느낀 바이든 대통령은 흑인 유권자가 많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에 공을 들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27일 이곳을 찾아 “여러분이 바로 내가 대통령인 이유”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바이든 대통령 요청대로 이번 대선 경선 첫 공식 프라이머리(예비선거)도 다음 달 3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개최한다.
2020년 대선 경선에서 탈락 문턱까지 갔던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에서 압승한 덕에 기사회생했다. 이때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적 우군이 돼준 이들이 흑인이었다.
그렇다고 흑인 표심이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완전히 선회한 건 아니다. 그는 지난달 “이민자가 우리나라의 피를 오염시킨다”며 막말을 했고,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2018년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을 가리켜 “우리가 왜 ‘거지소굴’ 같은 나라 사람들을 받아줘야 하느냐”고 발언해 빈축을 샀다. NYT는 “바이든 대통령을 가장 비판하는 (흑인) 목사들조차 트럼프의 재선이 흑인·노동계급에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데 동의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측에선 기대감을 내비친다. 그의 대선 경선 캠프 고문인 크리스 라시비타는 갈 곳 잃은 흑인 표심을 “우리가 활용하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AP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통령 선출은 압도적인 백인 기반을 넘어 자신의 매력을 확장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며 “(공화당 유일 흑인 상원의원인) 팀 스콧 의원은 트럼프의 잠재적 러닝메이트로 자주 거론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