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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병을 찾아가는 길

지역뉴스 | | 2023-11-09 17:46:57

전문가 에세이,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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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한 평생 살며 여러 개의 길을 걷는다. 모두 처음 가보는 인생길이다. 호메로스의 대 서사시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 장군이 걸었던 길의 얘기다. 수없이 많은 장애와 덫을 헤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살고 있는 고향땅 이타카로 돌아가는 기쁨과 희망의 길이었다.

최근에 나도 배운 지식과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병을 찾아가는 길을 걸었다. 그 길은 오디세우스가 걸었던 가족애의 기쁨이 아닌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고민의 여정이었다.

나이 탓인지 헬스 센터에서 매일 해오던 근육운동과 스트레칭이 어느 날 말썽을 일으켰다. 운동기구를 이용하여 스트레칭 하던 중 갑자기 왼쪽 종아리가 몹시 아팠다. 햄 스프링 근육을 삔 것 같아 찬물로 마사지 했더니 통증이 조금 좋아졌다. 다음 날 다시 운동을 하러 갔다. 이번엔 왼쪽 정강이 윗부분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인대를 다쳤나 싶어 소염진통제를 먹고 쉬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몇 주 후 정형외과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았다. 단순 하지 방사선 사진 한 장 찍은 뒤 왼쪽 다리 인대가 손상된 것 같으니 진통제를 복용하고 좀 쉬면 나아질 것이라 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도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왼쪽 허리,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가끔 발까지 내려가는 방사통이 생겼다. MRI를 찍어본 결과 척추 4-5번째가 협착이 심하고, 그 곳 추간판이 조금 삐져나온 모습이었다.

허리 척추질환을 유발하는 많은 병들이 있다. 퇴행성 허리디스크, 추간판 탈출증, 척추협착증, 척추측막증, 척추후만증, 척추전만증, 척추압박골절, 강직성 척추염 등등이다. 보통 척추질환은 한두 가지가 함께 발생한다. 어떤 경우에는 서너 가지 병이 같이 있는 경우도 있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매우 어렵게 만든다.

등을 곧바로 펴고 걷는 인간에게 허리 통증은 매우 흔한 증상이다. 노인들에겐 더 흔하다. 척추뼈 자체나 척추뼈를 지탱해주는 인대나  근육, 그리고 척추뼈 사이 쿠션 역할을 해주는 디스크에 이상이 생기면 통증을 유발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로서 어느 정도 척추신경의 구조와 기능을 알고 있다. 오디세우스 귀향길 10년보다 훨씬 짧은 한 달만에 내 병을 찾았다. 노화로 인한 척추 협착에 어느 순간 허리 디스크에 강한 압력을 주어 디스크가 터치고 일부 수액이 빠져나와 신경뿌리를 자극한 것이 원인이었다.

어떻게 할까? 먼저 자가치료를 택했다. 진통 소염제, 물리치료, 침까지 맞아 보았지만 결과는 그저 그랬다. 급성 통증이 없어져 일상생활을 지속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으나 신경외과의사의 진찰을 받아보았다. 신경외과의사는 MRI를 보더니 4-5 척추뼈 가장자리 부분에 뾰족하게 자라난 뼈 조각(Bone spur)이 신경을 눌러 증상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신경차단 치료나 물리치료로는 해결이 안 되고 자라난 뼈를 긁어내는 수술이 답이라 했다.

아내와 상의한 뒤 수술날짜를 받았다. 그리고 북유럽 여행을 12일간 다녀왔다. 매일 짐 싸서 버스나 비행기,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구경하는 힘든 여정이었다. 큰 신체적 어려움 없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신경외과의사 말대로 수술을 받으면 증상이 말끔히 없어질까? 삐죽이 자란 척추뼈 조각을 잘라내면 조금은 좋아지겠지만 기존의 척추협착이나 디스크 파열 증상은 그대로 남아있을 것 같았다. 이제 극심한 허리 통증이 사라졌고, 다리에 마비가 와서 힘이 없거나 대소변 곤란도 없는데 꼭 수술을 받아야 될까? 수술 후 한두 달 가량은 회복을 위해 쉬어야하는데 하루하루가 소중한 내 나이에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일주일 동안 고민한 후 결국 수술을 취소하고 말았다. 

수술을 취소한 내 결정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오디세우스의 귀향 열망처럼 최종 결정을 한 내가 자랑스럽다. 호메로스는 승리자의 자만과 오만을 일깨워주려고 오디세우스 장군에게 힘든 여정을 안겨주었다. 나 역시 허리 통증을 교훈 삼아 조용히 겸손하게 주어진 삶을 이어가려고 한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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