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하마스의 10/7 공격으로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따른 ‘국민적 트라우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천명한 ‘강력한 응징’ 의지에 연료를 제공했다. 그러나 격한 감정에 휩쓸리다보면 냉철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 가자지구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군사작전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과거 팔레스타인의 테러행위에 분노한 이스라엘의 우익 정부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상대로 벌인 대규모 무력 응징의 씁쓸한 결말을 떠올렸다.
수십 년전, 팔레스타인의 주요 정파였던 PLO는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레바논의 베이루트에 군사기지를 마련했다. 이곳을 거점 삼아 팔레스타인의 군소 조직들과 연합한 PLO는 이스라엘 방위군과 크고 작은 무력충돌을 일으키면서 국경지역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PLO의 도발이 이어지자 메나헴 베긴이 이끄는 이스라엘의 리쿠드 정부는 1982년, 지상전을 통해 PLO가 레바논에 구축한 군사시설을 초토화하고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을 레바논 국경지역에서 몰아내기로 결정했다. 베긴 정부는 군사작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레바논의 무장 집단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 민병대와 손을 잡았다. 이들과 협력해 PLO를 소탕한 후 베이루트에 기독교 정권을 세운다는 것이 베긴의 복안이었다.
레바논 침공은 한마디로 대규모 ‘유혈극’이었다. 8만 명의 병력과 1,200여대의 탱크를 앞세운 이스라엘의 공격에 어림잡아 1만7,000명의 사망자와 3만 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PLO를 레바논에서 몰아낸다는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피로 물든 승리는 이스라엘의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부작용을 불러왔다. 레바논의 기독교 민병대는 이스라엘이 장악한 베이루트의 사브라 지역과 인근에 세워진 샤티라 난민캠프에서 여성과 어린이 및 노인들을 비롯한 수백,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했다. 이스라엘의 침공은 레바논의 비기독교 세력을 결속시켰고,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조직인 헤즈볼라 결성으로 이어졌다. 현재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최악의 테러집단으로 꼽힌다. 지난 10월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5,000발의 로켓을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의 든든한 지원군인 헤즈볼라는 15만 발의 로켓과 미사일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과거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배워야할 확실한 교훈은 전쟁이 당초 예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여러 면에서 중동지역의 긴장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불러온 의도치 않은 무산물이다. 미국의 공격으로 수니파가 장악한 사담 후세인 정부가 무너지자 이라크는 이란과 깊은 관계를 맺은 시아파 지도자들의 차지가 됐다. 이로 인해 수니파가 절대 다수인 페르시아만 연안의 아랍국들이 동요하자 이스라엘이 이들에게 접근했다. 이스라엘과 페르시아만 연안국이 관계 개선을 통해 거리를 좁히자 위기의식을 느낀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극단주의 단체들은 위험한 불장난으로 맞섰다. 또한 미국의 침공은 이라크에서 이슬람 스테이트(IS)의 전신인 카에다를 만들어냈다.
현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시카고 대학의 로버트 페이프 교수가 지적하듯, 테러리즘을 꼼꼼히 뜯어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지속적인 손상을 입히는 유일한 방법은 테러범들을 색출해 선별적인 공격을 가하는 한편 테러분자들과 현지인들 사이에 쐐기를 박는 정치공작을 병행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페이프 교수는 무력대응과 함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로 이어질 연결로를 열어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중부 사령부 사령관으로 복무하면서 이라크 테러그룹의 준동을 격퇴하는데 혁혁한 성과를 거둔 퇴역 장군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현지의 민간인들을 테러그룹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현지 주민들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희망을 제공하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앤드류 로버츠와 공동으로 펴낸 새로운 저서 “충돌: 1945년 이후 전쟁의 진화”에서 그는 이라크내 테러분자들의 준동을 성공적으로 분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순수한 군사적 요인만큼이나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퍼트레이어스의 전략을 따르지 않고 있다. 가자에는 3만 명에서 4만 명 사이로 추산되는 하마스 전사들이 어린이들이 절반을 차지하는 200만 명의 민간인들 사이에 섞여 있다. 가자 주민들은 하마스에 엇갈린 견해를 갖고 있다. 2006년 단 한번 선거에서 승리한 하마스는 2007년 집권 정당이었던 파타당과 결별한 후 팔레스타인을 양분해 통치하고 있다. 현재 하마스가 지배하는 가자의 주민 200만명은 이스라엘의 봉쇄로 대부분의 식품과 식수, 연료 공급이 끊긴 상태에서 거의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공습에 시달리고 있다. 중동 관측통들은 바로 눈 앞에서 수 천명의 민간인이 처참하게 사망하는 광경을 지켜본 가자 주민들이 하마스를 중심으로 결속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렇게 되면 제대로 고안된 반테러 전략이 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외지인이 이스라엘의 대응에 이런 저런 훈수를 두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을 비롯, 세계 곳곳에서 폭을 넓혀가는 반유대주의 정서로 인해 한층 더 예민해진 상태다. 그러나 네타냐후 정부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빚어진 정책이 이스라엘의 국익에 궁극적인 도움이 될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헤즈볼라를 만들어냈다. 이스라엘이 웨스트뱅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무력화한 결과는 하마스의 세력 확장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현재 진행중인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에게 좋은 결과는 분명 아닐 것이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