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지지 압박 ‘곤혹’
이스라엘과 하마스 무력 충돌로 전 세계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진영으로 나뉘어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기업들이 한 쪽을 지지하라는 압박을 받으면서 미국 경제계가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쪽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경영진과 직원 간의 대립은 물론 블랙 리스트 명단이 공개되고 사퇴와 불매 운동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이·팔 분쟁이 미국 재개로 확산되면서 대립 구도가 심화되고 있다.
23일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기업들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과 관련한 정치적 견해 표명으로 심각한 대립 국면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반이스라엘 직원’ 수백명의 이름과 직장을 알리는 웹사이트가 등장했다. 이 명단에는 아마존, 딜로이트, 마이크로소프트, 마스터카드, 매켄지 등 미국 주요 기업의 직원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 웹사이트를 처음 만든 헤지펀드 매니저는 “내가 이런 회사에 다니고, 그곳의 친구가 링크트인에서 하마스를 칭송한다면 난 불안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온라인에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한 대학생들 이름을 적은 블랙 리스트도 돌고 있다. 앞서 한 보수 단체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하버드대 학생들 이름을 전광판에 띄운 트럭을 학교 주변에서 운행하면서 취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도 있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무력 분쟁에 대해 가급적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여러 기업에서 경영진이 하마스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을 공개 지지하는 성명을 내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는 직원들의 압박이 있다고 NYT는 전했다.
특히 아마존과 메타, 구글 등 이스라엘 현지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는 IT 대기업에서 직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구글의 일부 직원들은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이스라엘 희생자를 추모하는 성명을 내고 팔레스타인 희생자에 대해선 입장 표명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앤디 재시 아마존 CEO도 이스라엘 근무자에게 위로의 이메일을 보냈지만 팔레스타인계 직원들에겐 아무런 위로 메시지도 하지 않아 직원들의 반발을 샀다.
유럽에서 열리는 대규모 기술 컨퍼런스인 ‘웹 서밋’의 패디 코스그레이브 CEO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일자 2009년부터 맡아 온 자리에서 사임하기도 했다.
갈등의 압박은 비단 IT 기업들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는 이스라엘 한 매장에서 이스라엘군에 10만개의 음식을 기부해 주변 중동 지역에서 맥도날드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경향이 더 크다. 제프리 소넌펠드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하마스 공격 이후 150곳이 하마스를 규탄하거나 이스라엘 지지를 표명했다”며 “가자 지구에서 기업 경영을 하는 미국 기업들은 하나도 없어 가자지구 직원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