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이규 레스토랑
첫광고

[삶과 생각] 월운산장기

지역뉴스 | | 2023-10-10 17:50:47

삶과 생각, 조광렬 건축가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월운산장(月雲山莊)’은 내가 거처하고 있는 나의 집에 붙인 이름으로 아래의 한시에서 비롯되었다.

“산새가 숲 근처서 우는 소리 듣는데/새로 지은 초가 정자는 실개울을 내려 보네/홀로 술 마시며 그저 밝은 달 짝을 삼아/한 칸 집에서 흰 구름과 더불어 산다네” <회재 이언적(1491~1553)의 한시 ‘계정(溪亭)’>

집이란 물건은 대궐 같은 집이든지 작은 초막이든지 본디 일정한 자리에 있는 것이요, 떠메고 돌아다닐 수 없는 것임에 집 이름도 특칭의 고유명사가 아닐 수 없으나 나의 ‘월운산장’은 특정한 장소, 일정한 건물 하나에만 명명한 것이 아니고 보니 여섯척 몸을 담아서 내가 그 안에서 자고 일하며 먹고 생각하는 터전은 모두 ‘월운산장’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산장이라 했으나 둘레에 산이 없는 곳이고 보니 ‘월운산장’은 깊은 산에 있거나 대도시 안에 있거나를 가리지 않고 똑같은 산장이다.

나는 달과 구름을 사랑한다. 달은 태양과 달리 뜨겁지 않고 은은하고 부드러워 좋다. 희미한 낮달은 흡사 존재감 없는 내 신세 같아 사랑할 수밖에 없고, 보름달은 그리움을 데려와주어 고맙다. 

그런가 하면 구름은 흘러다니며 나의 눈에 위안을 주어 좋다. 인간의 영혼이 유한과 영원 사이에서 망설이며 방황하듯이 구름도 하늘과 땅 사이에서 방황하며 떠돌기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내외는 지난 2019년 1월에 맨해튼 이스트 리버 강변의 코압 20층에 있는 원 베드룸으로 생애 마지막 이사를 왔다. 58년 된 아파트여서 내부가 구식이고 낡았는데 클로징 후 다 걷어내고 패션디자이너인 막내아들 내외가 인테리어 전체를 흰색 톤으로 바꾸어 현대식으로 리모델링 해주었다. 

명색이 건축가인 나를 감동시킨 것은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작업공간이 필요한 나를 배려해 책장, 탁상용 이젤과 컴퓨터를 놓을 수 있는 책상 및 서랍들을 흰색 미닫이가 달린 붙박이 장속에 모두 숨겨놓아 평소에는 서재가 없는 듯 연출한 유니크한 발상이었다. 집이 더 넓어 보이고 깨끗해서 좋다. 이를 위해 다른 자식들도 십시일반 비용을 보탰단다. 내 주거공간이 단숨에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마천루숲 속에서 사는 뉴요커들은 집에서 자연과 햇볕을 즐기기 쉽지 않다. 그러나 나의 집은 주변에 6층짜리 아파트가 대부분이어서 뷰가 시원하고 동남향의 코너에 위치해서 하루 종일 볕이 들어 마음을 밝게 해준다. 

가끔씩 눈 아래로 노니는 구름을 볼 수 있는 것이 색다른 즐거움이요, 모든 방 심지어 주방에서도 흐르는 강물과 오가는 온갖 종류의 배들과 BMW(브루클린, 맨해튼, 윌리엄스버그) 세 개의 다리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복이다. 

야경도 멋지거니와 하루도 똑같은 적이 없는 일출 직전의 황홀한 아침노을과 강 건너 빌딩위로 눈부시게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 저녁 일몰의 노을 진 꽃구름을 매일 번갈아 바라보는 이 즐거움!

다산 정약용은 ‘인생의 3락’ 중의 하나로 “곤궁했을 때 지나온 곳을 성공하여 찾는 것”을 꼽았다. 1971년 내가 미국에 첫발을 디딘 직후, 아침에는 차이나타운 닭 공장에서 닭 모가지도 따고, 저녁엔 핍스 애비뉴의 레스토랑에서 접시닦이, 버스보이를 하던 유학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내가 오십년 후 이렇게 맨해튼에 거주하며 곤궁했던 시절에 일하던 곳을 찾아가보고 그 특급식당에 가서 음식을 서브 받고 후한 팁을 주고 나오는 그 ‘락(樂)’을 맛보았으니 나는 그 ‘인생삼락’을 어느 정도 누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단 한 가지, “이곳에서 때가되면 깨끗하게 죽게 도와주소서.” 두 손 모으는 깊어가는 ‘월운산장’의 달 밝은 가을밤이다.

<조광렬 건축가>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여성 패션 브랜드 애비 글래스 매출 400% 증가
여성 패션 브랜드 애비 글래스 매출 400% 증가

벅헤드 빌리지 매장 운영일반 의류·결혼식 드레스 등 판매 패션 브랜드 애비 글래스가 매출 400%의 증가 성과를 냈다. 애비 글래스는 우아함과 여성성에 중점을 두고 제작된 여성 패

한인 운영 요양시설 '미선 시니어 리빙' 그랜드 오픈
한인 운영 요양시설 '미선 시니어 리빙' 그랜드 오픈

비중증 노인환자 수용 85베드 규모프라미스교회 인근 9.8에이커 부지  85베드 규모의 한인운영 최신식 노인요양시설인 미선 시니어 리빙(Mesun Senior Living)이 8일

추수감사절 여행 준비 잘하고 계신가요?
추수감사절 여행 준비 잘하고 계신가요?

반드시 자동차 검사 미리 받아야크루즈 컨트롤로 안전 거리 확보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서 자동차 여행을 준비하는 여행객들이 늘고 있다. AAA는 작년 연휴기간 동안에 약 5천만 명이

"바이든 행정부, 삼성 등과 반도체 보조금 합의 마무리 서둘러"
"바이든 행정부, 삼성 등과 반도체 보조금 합의 마무리 서둘러"

블룸버그 "삼성, 여전히 계약 세부 사항 처리 중…최근 다시 속도""TSMC는 협상 마무리…조만간 최종 보조금 발표 전망"트럼프, 대선 때 "정말 나쁘다"…"공화당 내부서 수정 논

마커스〈홈디포 공동창업주〉 장례식에 정재계 인사 총출동
마커스〈홈디포 공동창업주〉 장례식에 정재계 인사 총출동

7일 유대교 사원서 열려유산 대부분 자선단체에 지난  4일 95세의 일기로 사망한   홈디포 공동창업주 버니 마커스의 장례식이 경제와 정치계 인사 등 많은 추모객들이 참가한 가운데

이대남뿐 아니라 이대녀도?… “민주당 떠난 표심”
이대남뿐 아니라 이대녀도?… “민주당 떠난 표심”

NBC, 4년 전과 출구조사 결과 비교… “30대 이하 공화당 더 찍어”인기 팟캐스트 동원 전략 통했나…청년층도 경제에 ‘방점’ 현지시간으로 지난 5일 치러진 제47대 미국 대통령

애틀랜타 뉴스전문 방송사 대규모 감원
애틀랜타 뉴스전문 방송사 대규모 감원

스크립스 뉴스 118명 해고 단행모회사 광고수입 감소로 수익 ↓ 애틀랜타에 본사를 두고 있는 뉴스전문 방송사 스크립스 뉴스가 대규모 감원을 단행한다.스크립스 뉴스 모회사인 EW 스

2024 한인교회협의회 정기총회 열려
2024 한인교회협의회 정기총회 열려

차기회장으로 최명훈 목사 임명 돼내년 1월 16일 사업총회 개최 예고 지난 7일, 11시 조지아주 로렌스빌에 위치한 아틀란타 한인침례교회에서 애틀랜타한인교회협의회의 정기총회가 열렸

스와니 새 참전용사 기념비 9일 헌정식
스와니 새 참전용사 기념비 9일 헌정식

오전 10시 타운센터에서 헌정식 스와니시는 토요일인 9일 오전 10시 ‘그레이터 굿’(Greater Good)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참전용사 기념비 헌정식을 개최한다.이 기념비는 4

조지아 최대 17억 배상판결 일단 없던 일로
조지아 최대 17억 배상판결 일단 없던 일로

포드트럭 전복사고 1심판결 취소항소법원”포드 반론권 보장안돼”피해자 측, 즉각 주 대법원에 상고   무려 17억 달러라는 조지아 최대 배상판결로 화제를 모은 포드 차량 전복사고 피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