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소비자물가 상승에 인플레와의 싸움 장기화
월가에서 연준의 피벗(Pivot·통화정책 방향 전환) 시점이 미뤄지게 됐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연준)의 11월 이후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보고서에서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길어질 수 있다는 신호가 나오면서다.
13일 연방 노동부는 미국의 8월 CPI가 전월 대비 0.6% 상승했다고 밝혔다. 8월 이후 급등한 국제유가가 휘발유 가격을 끌어올린 영향이 전체 상승분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미 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재점화를 각오했던 시장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이날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가 0.2% 하락했지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0.12%. 0.29% 올랐다. 선물 시장도 여전히 금리 동결 가능성을 더 높이 보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9월 금리 동결 가능성은 97%로 전날(93%)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11월과 12월 금리 동결 가능성도 각각 56.8%, 56.3%로 전날보다 소폭 상승했다.
투자자들과 달리 월가 기관들 사이에서는 8월 CPI로 연준이 매파적 기조를 거두기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이번 CPI는 연준에 여러 딜레마를 제시한다”며 “우리의 기본 전망은 연내 금리 동결이지만 11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물가 불안 요인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이 자체 산출한 ‘주거비 제외 근원 서비스(슈퍼코어) CPI’는 전월 대비 0.37% 증가했다. 3월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다. 슈퍼코어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현재 인플레이션의 핵심으로 지목한 영역이다. BMO캐피털마켓의 벤 제프리는 “연준은 다음 주 금리를 올리지 않겠지만 슈퍼코어의 상승을 고려하면 11월 금리는 그 시점에 실시간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11월 이후에는 마지막까지 동결에 대해 안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인플레이션의 경직성도 8월 들어 다시 커졌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이 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는 품목을 모아 별도로 집계하는 경직성 CPI(Sticky CPI)의 3개월 연율은 8월 3.6%로 전월(3.4%)보다 오름세가 가팔라졌다. 경직성 CPI의 상승 폭이 커진 것은 올 2월 이후 처음이다. 웰스파고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사라 하우스는 “인플레이션이 다소 더 경직될 것이라는 신호가 나오면서 정점 금리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도 “예상보다 뜨거운 물가 상승은 연준이 이달 금리 동결 이후 11월이나 12월에 다시 금리를 올릴 옵션을 열어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네이션와이드생명보험의 캐시 보스찬칙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근원 CPI 통계는 다시 실망스럽다”면서 “이는 연준이 매파적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11월과 12월에 금리 인상이 가능함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다만, 소비지출 위축과 고용시장 냉각 등 인플레이션 둔화를 촉진할 여러 요인이 있기 때문에 연준이 오는 19~20일 통화정책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우세하다고 전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에서는 이번 달 기준금리 동결 전망이 97%에 달한다.
이에 시선은 다음 주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나올 점도표에 쏠린다. 연준이 점도표에서 내년 말 금리 전망을 기존 4.6%보다 높여 제시할 경우 피벗 시점을 늦추겠다는 의미다. 미즈호증권의 도미닉 콘스탬은 “(이날 CPI나 인력 부족을 고려하면) 연준이 내년과 내후년 금리 전망을 더 높이 올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