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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살고 싶소'

지역뉴스 | | 2023-08-21 10:39:56

수필,박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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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살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를 울타리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시, 노천명 1912-1957)

노천명 시인은 1912년 황해도 장단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 처녀 시집 장호림, 별을 쳐다보며 등 다수의 시집을 냈다. 어린 시절  병치레를 하도 많이 해 이름을 천명이라 지었다 한다. 천재 시인은 46세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이 하… 시끄러운 요즘같은  때, 돌산 아래 홀로 거닐으며 옛 시인의 시를 읊어본다.

요즘 같이 지구 별에 무서운 재앙이 있었던 때가  있었던가…

삽시간에 닥친 불이, 와우이섬을 삼켜 버렸다.  지구 별도 이젠 수명이 다 된 것일까…

나같은 촌부는 알 수 없는 지구 별 이야기, 우린 너무 살기에 바빠 지구 별을 잔인하게

마구 대하지 않았나… 부끄러운 맘이 든다.

나홀로 도나 닦겠다고 

님은 떠나시고

나는 남아서 

꽃이나 가꾸며 산다네.

뻐꾸기, 소쩍새 울음

갈 하늘 풀벌레 소리

온갖 들꽃들  마당 가득 심어두고

언젠가 님 오시면

보시라

자잘한 잔정도 꽃으로 피어 있거니

내 그리움의 꽃밭에는…

영혼 깊숙이 심어 둔 꽃들이 피웠네

한 줌의 흙을 품고

겨울을 울어 울어

그 아픈 가슴 사랑의 불 지펴

잠든 내 영혼 흔들어 깨운다

머지 않아 돌산 바위에는 '노란  갈 데이지'가 산을 덮는다. 연약한 그 꽃대가 백도가 넘는 불볕에  아무도 몰래  핀 생명의 꽃들이 산을 덮는다. 우리 집 바윗 틈에는 작은  솔씨가 떨어져 이 불볕 여름을 견디며 아름다운 솔 분재로 자라고 있다. 

흙 한 톨 없는 그 뜨거운 돌 위에 어찌 그 여린 생명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그 생명의 신비, 강인함에 자연앞에 서면 난 부끄러울 때가 많다.

요즘처럼 시끄러운 세상이 또 있었을까… 

 돌산 아래 살면서  돌산 지기로  돌같은 마음으로 묻혀서 조용히 살고 싶다.

우리 집엔 매년 가꾸지 않아도 홀로 피었다 지는 들꽃들이 나의 벗들이다.

잡초 제거제만 뿌리지 않으면 들꽃들은 어디서나 아름답게 핀다.

꽃들은 자신의 꽃피는 계절을 안다. 분꽃은  오후부터 핀다해 이름이  '포 오크락'이다. 

밤마다  분꽃은 별빛 더불어 꽃들의 장관이다.자연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꽃들의 시계가 있다.

해바라기 피는 계절에는 노오란 새떼들이 어찌 알고 어디서 날아온 걸까… 

사람들은 그 외딴 산골에서 어찌 사느냐… 묻지만 아침마다 들꽃 인사, 이름모를 새들이

찾아와 나는 더불어  도를 닦는 기분이다. 

지구 별에 천지 운행의  조화도 멎은 건가… 지구 별이 변했다.

하늘이 무심한 지구 별의 재앙을 우린 이제 다시 돌아볼 때이다.

한줌의 흙을 가슴에 품고 돈보다 아끼고 자연을 사랑해야 할 때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헐고 별장을 짓고 , 공장이 서고, 골프장을 만들고… 사람에 쫓겨서 자연은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 .

자연은 스스로 그냥 두면 꽃이 피고, 물 흐르고, 새들이 둥지를 튼다. 자연의 품에는 명품을 들지 않아도 된다. 잘산다는 것 때문에  이 지구 별을 인간이 살 수 없는 불모지로 만들지는 않았는지 우린 생각해 볼 때이다. 지구가  뜨겁게 타면 바다에  물고기들도 살 수가 없어 바닷가에 죽은 물고기가 떠다닌다. 섬들도 물 수위가 올라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지구 별 재앙을 우린 다시 생각해 볼 때이다.

좀 못살면 어떠랴, 둥굴레산 올라 산나물 캐고 뻐꾹채, 장구채, 범부채, 도라지, 곰취,개 두릎 사람 살리는 온갖 약초들이 살고 있는 자연을 다시 찾자.  목사 없는 교회당, 누구나 설교하는 산골 마을, 그날의 향수가 그리운 세상 아닌가… 우린  잃어버린 그 옛날을  다시 찾아가자.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놋양쁜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산골 얘기를 하며 

참 마음, 그 옛날로 우리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시인 박목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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