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치 위스키의 모든 것
위스키가 상한가를 경신하고 있다. 특히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사이에서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져 나온다. ‘혼밥’ ,’혼술’이 대세인 팬데믹 시국 중에도 위스키를 즐기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지난해 1~11월 위스키의 수입액은 약 3,070억 원으로 전년 대비 40%가량 증가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가격을 올리거나 악성 재고를 떠안아야 인기 위스키를 판매할 수 있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한술 더 떠 국산 위스키도 등장했으니 ‘김창수 위스키’는 희소성을 업고 재판매가가 200만 원대까지 뛰기도 했다. 과연 위스키는 어떤 술인가? 이런 흐름에 ‘족보’로 삼을 수 있는 스카치 위스키의 모든 것을 정리해 보았다.
위스키의 어원
종주국이라 주장하는 아일랜드부터 몇 년 전부터 엄청나게 각광받는 일본, 버번(bourbon)이라는 또 하나의 주류를 우뚝 세운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위스키가 생산된다. 하지만 위스키라면 스카치, 즉 스코틀랜드의 술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재료는 조금씩 다를지언정 증류주의 명칭은 라틴어로 ‘생명의 물’을 뜻하는 아쿠아비테(aqua vitae)다. 이를 스코틀랜드 게일어로 옮긴 ‘우스게 바하(uisce/uisge beatha)’로부터 ‘위스키(whisky)’라는 명칭이 자리 잡았다. 스코틀랜드와 일본에서는 ‘Whisky’, 미국과 아일랜드에서는 ‘Whiskey’로 철자가 다르다는 점은 중요한 상식이다.
위스키의 역사
증류주의 역사는 기원전 약 30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 가운데 12세기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가톨릭 수사들이 연금술사로부터 전수받은 요령으로 만든 증류주가 위스키의 기원이라 보고 있다. 위스키에 관한 최고의 문헌 기록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1172년 잉글랜드의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침입했을 당시 주민들이 보리 증류주를 마셨다고 한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생명의 물’로, 증류주가 처음에는 약용으로 쓰였음을 시사한다.
위스키의 숙성
증류를 거친 위스키는 숙성을 거쳐야 상품으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숙성에는 나무통을 활용하는데, 세포의 화합물이 벌레가 꼬이는 걸 막아준다는 장점 때문에 참나무(오크)의 심재로만 만든다. 참나무는 기본적으로 타닌, 바닐린 등의 방향족 화합물을 품고 있는데, 이 화합물은 통의 제작 과정에서 불에 그을림으로써 한층 더 강해져 위스키의 숙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도수가 높은 알코올이 세월을 거듭하며 통의 안쪽 면에 있는 화합물을 녹여내 머금게 되니, 숙성시킨 위스키는 바닐라나 정향 등의 복잡 미묘한 향을 품는다. 한편 숙성 과정에서 나무통이 숨을 쉬면서 위스키가 증발하니 이를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일컫는다.
조례에 의하면 스카치 위스키는 최소 3년 이상 숙성시켜야 판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3년만 숙성시켜 내놓는 경우는 드물고 대체로 ‘8-10-12-15-18-20-25-30년’의 수준에서 제품군이 갖춰져 있다. 고숙성일수록 ‘천사의 몫’이 많아져 양 또한 줄어들기 때문에 가격이 뛰는데, 대체로 앞자리가 바뀔 때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위스키의 숙성은 병에 담는 순간에 막을 내리니 30년 숙성 제품을 사서 10년 더 둔다고 40년짜리가 되지는 않는다.
블렌디드와 싱글 몰트, 캐스트 스트렝스
스카치 위스키의 핵심이라 꼽을 수 있는 싱글 몰트는 이름 때문에 헛갈린다. ‘싱글’이기 때문에 단일 품목 위스키를 병에 담았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로 다른 숙성 정도의 위스키를 섞어 맛과 향, 그리고 물을 더해 도수의 균형을 맞춘다. 따라서 싱글 몰트도 섞어 만드는데 다만 단일 증류소의 위스키를 섞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맥켈란이라면 맥켈란 증류소의 위스키만을 섞어 한 병을 채운다. 반면 여러 양조장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술을 섞어 병에 담은 게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y)인데 대표적인 경우가 조니 워커다. 블렌디드 위스키의 경우 앞서 언급한 그레인 위스키 또한 아울러 균형을 맞춘다.
물을 타지 않은 위스키를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가 있다. 명칭처럼 섞지만 물은 타지 않았음을 의미하니 도수가 높고 그만큼 맛과 향이 한층 더 강렬해 말 그대로 술통에 담겨 있던 술의 힘을 고스란히 전한다. 위스키의 기본 도수인 40도를 훌쩍 넘겨 50~60도대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위스키의 맛과 향
싱글몰트의 양대 향을 꼽자면 피트(Peat)와 셰리(Sherry)다. 이 두 향이 빠지면 스카치 위스키는 ‘소 없는 찐빵’처럼 밋밋해진다. 피트는 식물이 지표에서 분해돼 생기는 이탄(泥炭)인데, 싹 틔운 보리를 굽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연료로 써 특유의 향이 완성품인 위스키에까지 배게 된다. 또한 피트가 풍성한 지역은 물에도 향이 배어 있으니 자연스레 개성이 드러나게 된다. 피트의 향은 흔히 아이오다인 또는 약 냄새라 구분하는데, 스코틀랜드 남서쪽의 섬이자 대표 산지인 아일레이(Islay) 위스키의 개성으로 꼽힌다. 대표 위스키로는 라프로익(Laphroaig), 아드벡(Ardbeg) 등이 있다.
한편 셰리는 숙성 과정의 막바지에 활약한다. 병에 담기기 직전 위스키는 다른 술의 숙성에 쓰였던 통에서 향을 덧입는데, 대표적인 예가 스페인의 주정 강화 와인 셰리 술통이다. 셰리 또한 나름의 우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등급이 다양하게 나뉘는데 스카치 위스키에는 오로로소(Oloroso) 통을 많이 써 특유의 호두와 캐러멜 향이 밴다. 그밖에도 미국의 위스키인 버번, 프랑스의 각종 와인 술통 등이 개성 첨가 및 마케팅 강화를 위해 위스키의 최종 숙성에 차출된다.
위스키 즐기는 요령
발효와 증류, 그리고 오랜 세월 두 차례의 숙성까지 거친 위스키는 향의 집결체다. 앞서 셰리와 피트, 바닐라와 정향 등을 언급했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그사이에 수많은 향이 제각기의 뉘앙스로 존재한다. 라임, 버터스카치, 캐러멜, 연기, 말린 무화과 등 거의 느끼는 대로, 이름 붙이는 대로 맡을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렇기에 위스키를 즐기는 대원칙은 감상과 음미다. ‘원샷’보다는 천천히 마시며 향을 즐겨야 개성 및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말 웬만하면 갖춰야 할 장비가 하나 있으니 위스키 전용잔이다. 와인잔과 흡사하게 배가 볼록 나와 있고 주둥이는 그보다 좁아 향을 최대한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가격도 1만 원대 초반으로 크게 부담이 없으니 소모품이라 생각하고 적어도 두 점은 갖춰둘 것을 권한다.
한편 그냥 마셔도 좋지만 스카치 위스키 또한 술이므로 안주 개념으로 음식을 곁들이는 것도 좋다. 겉면을 잘 지져 맛을 한껏 살려낸 스테이크나 훈제 연어 등 식사 음식도 좋지만 위스키의 맛과 향을 북돋아줄 주전부리 정도면 충분하다. 대세인 셰리 숙성 위스키라면 같은 향을 풍기는 초콜릿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 한편 위스키 산지는 전반적으로 바다와 인접한 지역이므로 짭짤한 안주 또한 전반적으로 좋은 짝이다. 다시마나 말린 홍합 같은 해산물이나 짭짤하고 풍성한 올리브, 그리고 치즈 등이다. 건포도나 아몬드 같은 건과 및 견과류도 두루 제 몫을 해준다.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