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당연한 것에 대하여

July 30 , 2021 10:10 AM
칼럼 수필 김정자 행복한아침

애틀랜타 여름은 지루한 편이다, 여름이 떠나려면 아직인데 한증막 같은 습한 더위가 연일 감겨든다. 무더위 기승에 시달리지 않으려 그나마 이른 아침에 산책길을 나서곤 한다.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상의 피서가 되는 이즈음이지만 외출시엔 마스크를 잊지 않는다. 

 

마스크를 의무화했던 방역지침이 느슨해진 이후에도 마스크 착용은 당연한 것 처럼 줄곧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델타 변이로 감염률이 급등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행정구역이 늘어나고 있는 것 또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할 실정이다. 델타 변이 기습으로 팬데믹이 지속될 것 같은 예측만으로 혹독한 집요를 불러들이고 지루하고 압담한 처절과 마주하는 것보다 난국을 이겨낼 생의 면역력을 키워내는 당연함을 택히기로 했다.

살아오면서 마땅히 당연한 것으로 지나쳐버린 일들이며 당연함을 무심결에나 굳이 지칭하지 않더라도 모름지기 당연한 것처럼 삶 속에 깊숙히 자리잡아버린 일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부지기수다. 매일의 아침이 열리는 것도, 한 가족이 건강하고 오손도손 행복을 누리는 것도, 부모는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며 자식을 양육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하며 자신의 할바를 묵묵히 이행하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부모의 노고와 한없는 희생까지 당연한 의무처럼 여겨오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삶 속에 당연한 것이 안착하게 되고 그 부피가 늘어갈수록 인생은 피폐해지고 감사도 감격도 무디어진다는 것을 엿보게 되었다. 신실한 감사에 무덤덤해지고 둔감해지면 불평 불만이 싹트게 되고 감사를 잃어버린, 당연함에 매도된 삶은 감동도 줄어들고 인성은 매말라 가고 지쳐버리기 십상이다. 기진한 삶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내 곁에 있는 것, 내가 소유한 것들이 마치 영원할 것 처럼 당연한듯 누리며 살아오는 동안 당연함은 예기치 않은 한 순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소실되거나 흘러가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으로 불변할 것 같은 상황 또한 찰나에 잃어버릴 수도 있거니와 당연할 것으로 여겨왔던 일들이 서서히 사라지기도 한다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팬데믹이 찾아든 것은 아니었을까.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지켜내기 위해서는 필히 감사를 잊지 않아야 할 일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당연한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결국으로 귀착된다.

일상에서 아침에 기상하는 순간 부터 숨쉬고 움직이고 걷고 식사를 하는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은 없음인데 습관적인 답습으로 인해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함의 배경에는 본인의 노력도 있겠지만 가족과 주변의 보살핌과 사랑과 관심이 있으매 가능하게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리 오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당연하다는 듯 맑게 개이곤 했었으니까. 

팬데믹이 일상을 와해하기 전만했어도 주변엔 당연했던 일이 얼마나 즐비했는지 모른다. 거추장스러운 마스크도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되었었고. 언제고 반가우면 포옹을 하고 악수를 나누었고 여행길도 자유로웠다. 만나고 싶은 지인들을 마음껏 제한없이 만나고, 각종 공연도 행사도 자유롭게 오가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이 당연했던 일상이었다. 팬데믹 이전 당연한 것 처럼 누렸던 평범한 나날들에 회오리가 휩쓸고간 폐허를 보는 것 같다.

계절이 바뀌 듯 시간 여백을 조급증 없이 누려왔듯 느리게 사는 법을 터득하려 했었던 시간들이 안개 처럼 피어오른다. 평범한 일상의 누림이 그렇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우쳐준  팬데믹 사태가 자신을 온몸으로 녹여내며 어둠을 밝혀주는 촛불 불꽃처럼 울컥하니 가슴 아린 온기로 전해진다. 일상 깊숙히 코로나 블루가 밀려들고 외로움과 스트레스가 쌓이고 당연한 사랑과 호의까지 불편해지는 제약과 한계에 직면하면서 좌절을 맛보게 해 주었다. 

그 동안 잘 못 생각하고 당연시 해왔던 일들에 대해 새로운 마음 새김을 하게 된다. 간결하지만 강열한 메시지로 가슴을 밀고 들어선다. 세상엔 당연한 것이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숨을 쉬고,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보행 하는 것도  우리가 누려왔던 그 어느 것도 당연하게 보였을 뿐이었다. 당연했던 것들을 향한 감사가 축복의 지름길임을 뜻밖으로 의외의 회심으로 행운으로 만나게 된 셈이다. 

델타 변이로 세상이 어지럽더라도 당연한 것에 감사하는 심령만 지닌다면 격 다른 평화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것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발견해가며 팬데믹 종착역에 비쳐질 소망의 서광을 기대해 본다. 

‘당연하지’를 힘주어 외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