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뉴욕타임스의 백악관 주재 선임기자인 피터 베이커(사진)가 11·3 대선 이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선거 불복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행보를 지적한 기사다.
지난 한 주간, 트럼프 대통령은 무려 145건의 메시지를 트윗하거나 리트윗했다. 내용은 한결같이 “도둑맞은 선거”에 대한 분노와 격렬한 현실부정이었다. 최악의 상태에 도달한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메시지는 단 네 건. 그것도 전문가들을 비난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내용이 전부였다.
측근들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요즘 집무실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팬데믹과 경제위기라는 “겹치기 위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직무를 유기한 채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한 묘수 찾기와 그에게 등을 돌린 “어제의 동지들”을 적으로 매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매일 새로운 이름이 추가되는 그의 “살생부”에는 윌리엄 바 법무장관과 일부 공화당 주지사들, 심지어 그의 메가폰 역할을 했던 폭스 뉴스까지 망라되어 있다.
이제 40여일을 남겨 둔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의 날들’은 문학작품 혹은 연극에나 등장할 법한 극적인 분위기가 주조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분노에 가득 찬 대통령의 트윗과 현실과 유리된 그의 행동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추락한 권력자’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약간은 비극적이고, 약간은 희극적이며, 늘 소음과 분노의 소용돌이를 몰고 다니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주인공들과 트럼프는 묘하게 닮았다.
이제 몇 주 남지 않은 백악관에서의 마지막 날들은 ‘강제 퇴임’후 그가 어떤 일을 벌일지 보여주는 예고편의 역할을 할 것이다. 백악관에서 밀려난 트럼프는 플로리다의 거점인 마라라고에 진을 친 채 조 바이든의 발목잡기와 2020년 대선을 부정선거로 몰아가는 전국 차원의 담론을 끌어내는데 온 힘을 쏟을 것이다.
지난 5일 밤, 트럼프는 조지아주로 날아가 선거일 이후 처음으로 대중 집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양새는 다음달 조지아주에서 치러질 두 건의 연방 상원 결선투표를 앞둔 공화당 후보들을 위한 지원유세였지만 그는 거짓 정보를 흘려가며 대선 승리를 도둑맞았다는 턱없는 주장을 되풀이하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그가 이끌어가는 비현실적인 리얼리티쇼는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전임자들과 달리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자인 바이든에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전화를 걸지 않았고, 1869년 이래 이임하는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후임자의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하루는 격분(열받아)과 부인(denial)으로 점철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쏟아내는 그의 트윗은 끈질긴 부인의 독기를 뿜어낸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결코 패하지 않았다”는 트윗에 이어 15만4,000표 차이로 바이든에게 내어준 미시간주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황당한 주장이 따라 나온다. 얼마전에는 “이런 상황에서 취임하는 바이든은 #허울뿐인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주문 같은 비아냥을 날렸다. 그의 근거 없는 선거부정 주장에 맞장구를 치지 않은 채 ‘민의 뒤집기’ 공작에 동참을 거부한 공화당 중견 정치인들에 대해선 “무늬만 공화당”이라는 막말 세례가 가해졌다.
지난 5일, 트럼프는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주의회 특별회기를 소집해 선거결과와 배치되는 공화당 선거인단을 구성하라고 윽박질렀다. 켐프 주지사가 자신의 요구를 거부하자 트럼프는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의 충복으로 분류되었던 켐프와 더그 듀시 애리조나 주지사를 “민주당 급진 좌파보다 훨씬 우리를 적대시하는 자들”로 싸잡아 비난했다. 이에 앞서 듀시 주지사는 선거결과 인증절차를 중단하라는 트럼프의 파상공세가 이어지자 아예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을 받아들이지 않는 언론 매체와 판사들도 그의 표적이 되었다. 트럼프는 지난주 백악관에서 공개한 46분짜리 비디오를 통해 “그들은 누가 선거에서 승리했는지 알면서도 당신의 주장이 옳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며 “지금 미국은 당신이 옳다고 말할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피붙이를 제외한 트럼프의 측근 가운데 “당신이 옳다”고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대통령이 올린 비디오 아래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담겨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는 경고 문구를 달아놓았다.
그의 강력한 우군이었던 폭스 뉴스가 관계정리 모드로 돌아서자 나팔수를 잃어버린 트럼프는 변두리 매체인 ‘원 아메리카 뉴스 네트워크’와 음모론자 집단인 큐애넌과의 친밀도를 높여가고 있다. 큐애넌은 사탄을 숭배하는 아동성애자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들이 트럼프를 겨냥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는다. 트럼프는 6주 남짓한 백악관의 남은 시간 동안 그에게 등을 돌린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숙청작업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하버드대의 제프리 윌슨 박사는 트럼프의 요즘 모습은 “대문호의 고전적 희곡 5장에 나오는 폭군의 행태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점차 강해지는 반대세력에 불안감을 느낀 나머지 자신의 성에 틀어박혀 합법적 권한을 불법적으로 휘두르고, 반대파를 역모로 얽으려 드는 영락없는 폭군의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윌슨 박사는 “지금 우리는 희곡의 5장에 진입한 셈”이라며 “파국은 늘 마지막 장에서 발생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