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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수필] 나무꾼과 선녀

지역뉴스 | | 2019-10-08 18:18:47

수필,김수린,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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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장례를 위해 가까운 가족과 손주들이 모였다. 올해로 91세를 넘기신 어머니는 딸을 3 명 낳으셨고, 그 3 딸이 낳은 자손이 5 명, 그 다섯에서 나온 증손이 8명, 사위와 며느리들이 모두 모이면 30 여명이 넘는다

 장례식은 아무도 미리 예상하고 준비 할 수 있는 일정이 아니라 모두 참석 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사는 손주들이 배우자와 증손주까지 데리고 장례식 일정에 맞추어 다 모이겠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30대에 과부가 되신 어머니는 딸 셋을 데리고 대한민국의 그 격동의 세월을 참으로 굳굳하게 살아 오신 것 같다. 한글만 겨우 깨칠 정도의 교육을 받았던 어머니는 주위에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고 딸들을 키우면서도 내게 힘든 기색을 보이거나 불평이나 원망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돌이켜 보니 나는 배가 고파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이나 대학을 졸업 할 때까지 등록금 걱정을 하였던 기억도 없다. 우리들의 가난하지만 안정되고 평온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웠을 것을 나는 결혼하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야 조금씩 깨달았다.

자녀들을 따라 미국에 오신 어머니는 그때부터 맞벌이를 하는 자녀들의 아이들을 키워 주셨다.

그래서 손주들 모두가 할머니에 대한 각별한 추억과 사랑이 있어 할머니 생신이나 특별한 모임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참석하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처럼 지켜지고 있었다.

  며칠 일찍 온 조카 내외가 저녁 늦게 볼일이 있다며 8 살 된 아이를 부탁하고 나갔다.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를 돌보아왔던 큰 언니 집은 눈길 닿는 곳 마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나 언니와 나는 마주치면 눈물을 훔치곤 했었는데 조카와 아이들이 오니 집안에 생기와 활력이 돈다.

  컴퓨터로 어린이 프로그램을 열중해서 보고 있는 아이에게 이제 잘 시간이라고 하니 보던 프로그램을 마저 보고 자겠다고 한다. 그러마 하고 그 프로그램을 끝내고 나더니 하나만 더, 하나만 더 볼께 하면서 조른다. 아이를 달랠 셈으로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해줄께 라고 하니 그제서야 마지못해 침대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누었다.

  이민 3 세대가 지나며 한국어도 모르고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조카 손자에게 한국 문화도 알릴 겸 한국 전래 동화를 들려주기로 했다. 언뜻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야기가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였다. 미국 동화책에서는 절대 접할 수 없는 진정한 한국의 전래 동화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였던 것 같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날 깊은 숲 속에 가난한 나무꾼이 살고 있었어, 하루는 나무를 자르고 있는데 사냥꾼에게 쫏기고 있는 사슴이 뛰어 왔어. 나 좀 살려 주셔요. 포수가 나를 잡으로 오고 있어요. 그래서 나무꾼이 나무 더미 밑에 사슴을 숨겨 주었지. 사냥꾼이 와서 이곳으로 뛰어 가는 사슴을 못 보았소 하고 물으니 나무꾼이 사슴이 저쪽으로 갔다고 숲 속을 가르쳤지.”

 얘기를 하고 보니 흠, 나무꾼이 거짓말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잠깐 들었다. 아니야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지.

  이야기를 계속했다.

 “목숨을 구한 사슴이, 고마워요. 제 목숨을 구해 주셨으니 소원을 말해 보셔요, 하고 말했지.

숲 속에 혼자 살던 나무꾼은 함께 살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 라고 대답을 했단다. 그랬더니 사슴은 저 숲 속에 연못이 있는데 보름달이 뜰 때 그곳에 가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할 것입니다.”

  라고 애기를 하다 보니 또 걸리는 대목이 나온다. 우선 선녀라는 개념이 영어에는 없는 것 같아서 이다. 한국의 선녀는 하늘에 사는 아름다운 처녀를 일컫는 말인데 그런 존재가 딱히 영어권에서는 없는 것 같다.  요정이라 부르는 Fairy 또는 천사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선녀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가 아는 선녀는 초인적인 어떤 능력도 없어 날개 옷이 있어야만 날아 갈 수 있고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진 존재로 인식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하늘에 사는 아름다운 숙녀들(beautiful ladies from heaven)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나니 그 다음 대목도 마음에 걸린다.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하는 곳에 가서 그 날개 옷을 하나 숨기라고 일러 준 사슴의 말은 이야기하다 보니 그것은 또한 미국에서 말하는 소위 피핑 탐(peeping Tom) 이라 명명되는, 타인의 사생활을 몰래 훔쳐보는 범죄 행위의 일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목욕하는 선녀의 옷을 훔쳐 감추어 놓아야 하는데 그것 또한 파렴치한 도둑질이 아닌가?

  나는 시작한 이야기를 중간에 그만 둘 수 없어 이것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한국의 전래 동화일 뿐이야. 라는 단서를 몇 번이나 되풀이 하며 말을 이어갔다.

  “나무꾼은 날개 옷을 감추어 놓아서 하늘로 올라 가지 못한 선녀를 집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아 아이를 둘을 낳았어. 그런데 선녀는 하늘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 날개 옷이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나무꾼을 졸랐지.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는 날개 옷이 있는 곳을 알려 주지 말라고 사슴이 경고한 말을 잊어버리고 날개 옷이 있는 곳을 알려주자 선녀는 아이들 둘을 양 팔에 안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어.”

  라고 애기하다 보니 계속 마음이 불편해 진다.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내가 이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그저 재미있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이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8살짜리 사내아이에게 들려 주기엔 오해의 소지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고것 같아 후회가 되었다. 더구나 선녀가 두 아이를 데리고 아이들의 아버지를 남겨 둔 체 미련 없이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라는 것을 이 아이가 어떻게 받아 들일까.

  나는 서둘러 이야기를 끝냈다.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 버리자 나무꾼이 매일 슬프게 울고 있었는데 사슴이 다시 나타나 알려 주었지. 보름달이 뜨면 연못에 가셔요.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 올텐데 그 안에 들어 가면 하늘에 가서 선녀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거에요. 그래서 나무꾼이 두레박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 선녀와 아이들을 만나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대요.”

 "They all lived happily ever after!

 

  반쯤 잠이 든 아이를 토닥이며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선녀가 느꼈을 절망과 무력감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이야기의 전개가 남성 우월주의와 우선주의를 상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늘에서 땅으로 일종의 강제 이주를 당한 선녀는 얼마나 힘들고 슬펐을까. 사슴이 제공하는 정보로 어쩌면 순진하고 무고한 젊은이가 비열한 사깃꾼과 폭력배로 변질된 것은 아닌가. 어째서 나는 이러한 동화를 이제껏 아무런 저항감이나 거부감 없이 수용해 왔을까.

  그리고 이 동화가 아직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처럼 아이들에게 들려진다는 것은 올바른 일인가.

내일은 이 아이의 엄마와 함께 이 이야기를 재 조명하여 다시 들려 줘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식민지시대와 6.25 한국 동란을 지나며 본인의 선택이 아닌, 잘못된 정치와 제도에 의해 정해진 운명 속에 힘들게 살아왔던 우리 어머니 세대의 수많은 여인들도 이 땅의 가련한 선녀들이 아니었을까.

 고른 숨을 쉬며 잠든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나는 기원한다.

이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미래의 세상에는, 사냥꾼에게 쫏기는 사슴도,

날개 옷을 잃어버려 슬퍼하는 선녀도 없는, 하늘과 땅이 모두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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