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6년, 일본 사신 다치바나 야스히로가 일본 전역을 평정하고 66주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서신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왔다. 인동(경상북도 칠곡)을 지나던 야스히로가 길가에 도열한 병사들의 창을 보고 비웃는 투로 말했다. "당신들 창의 자루가 참으로 짧습니다그려."
그는 또 상주 목사 송응형이 베푼 주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랜 세월을 전장에서 보냈기에 이렇게 터럭이 희어졌지만, 귀공께서는 기생들의 노래 속에서 편안하게 세월을 보내는데 어찌 머리가 희어졌소?"
대단한 비아냥이다. 그런데 송응형은 그때 부끄러운 줄이나 알았을까. 그리고 서울에 도착하자 예조판서가 베푼 잔치 자리에서 야스히로는 호초(약재로 쓰이는 후추나무 열매)를 한 주먹 꺼내더니 자리에 뿌렸다. 그러자 기생들과 악사들이 달려들어 호초를 줍느라 잔칫상은 금새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야스히로는 크게 질타했다. "너희 나라가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 아랫사람들의 기강이 이 모양이니 이러고서 어찌 나라가 온전키를 바라겠느냐."
실로 우리를 뼈저리게 하는 대사들이다. 1590년 3월, 황윤길을 상사, 김성일을 부사로 삼고 허성을 서장관으로 한 조선통신사 일행은 사신으로 온 쇼오 요시토시를 따라 일본에 건너갔다. 통신사 일행은 이듬해인 1591년 봄에 돌아왔는데, 황윤길은 사신 일행이 겪은 내용을 기록한 글을 올리면서 "머지 않아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김성일은 전혀 다른 보고를 올렸다. "신은 그런 기색을 느끼지 못했나이다. 윤길은 공연히 민심을 현혹시키고 있사옵니다." 이렇게 되자 조정의 의견 또한 둘로 나뉘게 되었다. 류성룡과 김성일은 함께 퇴계의 문하였다. 김성일을 만난 류성룡이 근심스럽게 물었다. "그대 의견이 상사와 전혀 다르니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러오?" 그러자 김성일이 이렇게 대답했다. "저 역시 일본이 절대 쳐들어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윤길의 말이 너무도 강경해 잘못하면 나라 안 민심이 동요될까봐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당시 조정에 있던 무장 가운데는 신립(申砬)과 이일이 가장 유명했는데, 조정은 1592년 임진년 봄에 신립과 이일을 변방에 파견해 순시토록 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4월 1일, 두 사람은 서울로 돌아와 임금께 보고했다. 그러나 그들이 조사해온 내용이란 것은 고작 활과 화살, 창과 칼 같은 무기들의 보유 실태뿐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제대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군이나 읍에는 문서상으로만 무기가 갖추어져 있을 뿐 실제로 필요한 무기는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 무렵 집으로 찾아온 신립(申砬)에게 류성룡이 물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큰 변이 일어날 것 같소. 그렇게 되면 그대가 군사를 맡아야 할 터인데, 그래 적을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소?"
신립이 대수럽지 않게 답했다. "그까짓 것 걱정할 것 없소이다. "류성룡이 다시 말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거에 왜군은 짧은 무기들만 가지고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조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소." 그러나 신립은 끝까지 태연한 말투로 대꾸했다.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답니까?" 이 무슨 어이없는 대답이란 말인가. 이 같은 안이한 생각이 결국 적을 불러들인 것이다.
요즘 고국에서 들려오는 것은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다.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없다. 북핵 위협은 여전한데 삼척항 북한 목선 입항 사건에서 보듯, 국가 안보엔 구멍이 숭숭 뚫렸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빨간 불이 켜진 가운데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는 우리 기업의 목을 죄고 있다.
일본의 경제 미사일은 정확하고 치밀했다. 경제로 타깃을 전환한 일본의 정치 보복은 정말 쓰리고 아프다. 문제는 우리에게 일본의 ‘수출 규제 미사일’을 막아낼 마땅한 ‘요격 미사일’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 기업의 책임이 아니다. 정권이 사태를 수렁에 빠뜨린 측면이 크다. 일본에서 혐한 분위기가 들끓고 아베 정부가 대놓고 칼을 갈고 있는 데도 우리는 또다시 사전 경계와 예방에 실패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못지않게 우려되는 것은 안보태세의 해체이다. 최근 북한 선박의 삼척항 입항은 안보 해체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알리는 결정적 사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튼튼한 안보를 위해 막강한 국방력과 한·미 동맹 강화'를 약속했다. 2년이 지난 지금 북한 핵 위협은 더 심각해졌고 안보 태세는 해체되고 있다. 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우리 안보의 두 축인 자체 국방력과 한·미 동맹을 조직적으로 허물고 있다. 우리가 먼저 양보를 하면 북한도 따라 할 것이란 어리석은 논리는 지난 수십 년간 북한 비핵화가 실패한 주원인이다.
한·미 동맹 역시 체계적으로 해체되고 있다. 지난해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 조건으로 요구한 한·미 연합 훈련과 전략 자산 배치 중단이 이뤄졌다. 유사시 후방 병참기지 역할을 할 일본과의 관계는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장병들의 병영 생활 개선에만 치중한 나머지 군 본연의 임무 수행을 위한 군기를 약화시키고 있다. 요즘 군에서는 병영 내에서 휴대전화 사용이나 근처지역 외출을 허용함으로써 병사들이 시간만 나면 휴대전화에 매달리고, 신병 군사훈련기간도 줄일 뿐 아니라 20킬로미터 행군 폐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강도 높은 훈련 수준을 요구하는 군단장에 대하여 병사들이 청와대에 보직 해임을 청원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런 군대가‘청소년 수련 캠프’와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상태로 과연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아래 싸울 수 있겠는가. 이렇게 정신력과 기강마저 무너진 군대에 의지해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을까.
전투에서 흘리는 피는 훈련에서 흘린 땀과 반비례한다. 강훈련이 강한 군대를 만든다. 군대는 강해야 한다. 강한 군대라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 임진왜란도 병자호란도 모두 위정자의 무능과 안이한 판단이 불러온 재난이었다. 이제 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제집 드나들 듯 휘젓고 다니고 있다. 정한론을 부르짖던 일본의 칼끝이 150년 만에 또다시 한반도를 겨누고 있다. 김정은은 계속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헝클어진 안보 태세 복구가 시급하다.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忘戰必危).”징비록을 쓴 서애 류성룡의 말이다. 과거 주변국 정세에 눈감고 집안싸움에만 골몰하다 외침을 받았던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진퇴양난의 대내외적 위기상황에서 정파나 이념보다 국가이익이 최우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