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음악 통해 관객과 공감 뿌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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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소녀상 염두에 둔 축약버전
짧은 준비기간 · 부족한 인력 아쉬움
소녀상 건립 이어 오페라까지...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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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노크로스 소재 애틀랜타 한인회관에서는 위안부를 소재로 한 창작 오페라 '그 소녀의 이야기'가 초연돼 많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 2주년을 맞이해 열린 기념식에서는 오페라 이외에도 그림 전시회 등 문화 기념식으로 치러져 한인뿐만이 아닌 여러 타인종 관객들로부터도 큰 환영을 받았다. 특히 오페라 '그 소녀의 이야기'는 한 무대에 위안부 소녀의 비극과 애틀랜타 소녀상 건립 과정을 함께 담아 큰 감동을 선사했다. 이 무대가 마련되기까지 작품을 기획한 소프라노 윤현지(극중 이영자)와 김지연(극중 박점례) 소프라노, 작곡가 이재신을 포함해 윤상원 무대감독, 김형록 지휘자 등과 소녀상 건립위원회 위원들의 공이 컸다. 그중 기획부터 무대 공연까지 전반을 총괄했던 주연배우 윤현지 씨와 김지연 씨를 만나봤다.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윤현지: 이하 '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한다는 말을 들어왔고 중학교 때부터는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레슨을 받으면서 노래를 했다. 노래를 계속 해왔지만 기독교인으로서 봉사를 하는 것에도 큰 중요성을 뒀던 나는 고등학교 무렵 노래를 하는 것이 정말 사회에 기여하는 것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배우 김혜자가 아프리카 어린이 구호 활동을 하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고 '앞에서 나서 빛나는 사람이 되면 동참을 유도하는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성악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성악가가 된 후 국제 콩쿨에서도 몇차례 우승했고 미국을 포함해 이탈리아, 일본, 한국 등에서 150회 이상의 공연을 했다"
(김지연: 이하 '김') "노래는 9살 무렵부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전까지 서울 시립 소년소녀 어린이 합창단 등에서 9년을 노래하면서 보냈고 자연스레 성악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결혼 이후에는 전문적인 음악 활동을 멈추고 육아에 전념하던 중 미국 유학의 길이 열려 다시 한번 성악의 꿈을 꾸게 됐고, 아이들의 교육도 함께 생각해 7년전 미국으로 오게 됐다. 늦깎이 학도로 성악 및 합창 지휘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캔자스 대학교 오페라 연주를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공부하던 중 애틀랜타로 이주해 이 지역에서는 작년말부터 성악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창작 오페라 '그 소녀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마쳤다. 소감은?
(윤) "물론 부족한 점은 분명 있었지만 관객들과 공감하고 위안부 문제를 깊이 각인시킬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김) "여러가지로 내게 큰 의미가 있는 공연이었다. 규모나 형식면에서는 오페라 공연이라는 화려함을 다 채울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애틀랜타 소녀상에 대한 이야기가 음악으로 전해지고, 많은 분들이 그 이야기에 공감하고 다시 한번 위안부 할머니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작품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윤) "이번에 기념식 무대에서 공연된 '그 소녀의 이야기'는 축약 버전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오페라 규모의 풀프로덕션을 염두에 두고 스토리 구상을 했다. 그래서 전체적인 스토리나 등장인물은 이미 뼈대가 있지만 기존의 오페라 무대보다는 축소돼 공연이 진행됐다. 공연 이후 감명을 받으신 많은 분들이 구체적인 제작비 지원 및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해 문의해왔다. 그분들의 도움이 곁들여지면 풀버전(Full Version) 제작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애틀랜타에서 '그 소녀의 이야기'를 초연하게 된 배경은?
(김) "민간 단체의 노력으로 애틀랜타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는 과정의 이야기에 감동받아 크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건립위원회가 2주년 기념행사를 실내에서 기획한다는 소식을 듣고 윤 씨와 함께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윤 씨가 알고 있던 이재신 작곡가가 위안부 소녀들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이미 써놓은 곡도 있던터라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추진하게 됐다. 70여년전 소녀들이 이유없이 감당해야 했던 수치와 망가진 인생의 과정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공연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오페라를 선택하게 됐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김) "짧은 준비기간과 부족한 문화 인력이었다. 애틀랜타에 더욱 풍성한 스텝진이 생겨 공연 예술이 풍성해지길 바란다"
(윤) "오페라가 축약버전이다 보니 연기를 하는데 있어 감정의 선이 서서히 기승전결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런 감정 연기를 해야하는 상황이어서 정서적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힘들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이 작곡가의 음악이 스토리와 유기적으로 잘 결합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위안부에 대한 생각이 많았을 것 같다
(윤) "연주 이후 외국인분들이 위안부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고, 정말 그런 일이 있었냐고 되물어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분들이 눈물을 훔치며 그 아픔에 공감하고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며 이 작품을 지속시켜서 다시는 이런 슬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올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생존자가 21명으로 줄었다.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국민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연한 기회에 음악인으로서 작은 부분을 찾은 것 같다. 애틀랜타에 소녀상 건립위원회가 있어 소녀상이 세워지고 오페라까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김) "영자의 어머니로 등장했던 이은정 메조 소프라노가 딸을 걱정하며 부르는 '편지 아리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놉시스가 만들어질 때 가장 먼저 구상됐던 부분으로 , 위안부 할머님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윤) "2장에서 영자가 옷과 손에 묻은 일본군의 피를 보고 혼란을 겪으며 '붉은 동백꽃이 활짝 피었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3장에서 연주된 잔잔한 멜로디의 감나무 노래는 정갈하고 차분해서 오히려 더 처연한 슬픔이 느껴졌다. 가사 중 '꽃이 만발하는 봄에 돌아가려 합니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는 '아...돌아가지 못하는데'라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이 메어 노래를 부르기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성악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윤)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사람을 위로하고 마음을 정화 시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자리에서 연주자 혹은 기획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꾸준히 하면서 재미든 감동이든 관객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연주를 해나가겠다."
(김) "올해안에 약속이 되어있는 다른 음악회들이 있지만 따로는 개인적인 음악회를 하나 만들고 싶다" 이인락 기자
소프라노 김지연(왼쪽)과 윤현지
극중 점례가 죽어가는 영자를 안고 눈물 흘리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