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 ) 권명오.
수필가. 칼럼니스트.
Ⅰ한국 38년(17)
처절한 민족 상쟁
모래 바닥을 열심히 파는 인민군과 빨갱이 교장을 지켜보던 군인들은 사람을 묻을 만큼 구덩이가 깊이 파지자 작업을 중단시키고 각자 자기가 판 곳에 들어가 앉으라고 한 다음 가차없이 총격을 가하고 묻어 버렸다.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민족 상쟁의 끔직한 비극의 실상이다.
전쟁이란 사람들의 인성을 미치광이로 변화 시키는지 그런 끔직한 일을 군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행했다. 말을 잃은 채 군인들을 따라 마을에다 숙소를 정한후 모닥불을 피어 놓고 있는데 총격을 기하고 땅속에 묻어버린 인민군 하나가 살아 나왔다가 다시 붙잡혔다. 마을 노인들은 군인들에게 하늘에서 내린 천명이니 살려 주라고 사정을 하면서 저 어린 인민군이 무슨 죄가 있겠나 전쟁에 강제로 끌려 나온것이 죄일 것이니 죽이지 말라고 해 군인들이 노인들의 부탁을 듣고 처형을 재고키로 한 순간 군인 하나가 나타나 인민군에게 6.25 남침 당시 어느곳에서 싸웠냐고 물었다. 이민군은 송악산을 넘어 개성을 거처 문산으로 진격 했다고 하자 군인은 ‘야 이 새끼야 내가 그때 그 곳 전투에서 죽을뻔 했고 우리 전우들이 너의 총에 맞아 죽었다"며 전우의 원한을 갚아야 한다고 끌고 가 쏴 죽였다. 아무도 그 군인의 원한을 풀어 줄 수 없고 또 만류 할수 있는 자격과 권리가 없는것이 비참한 전쟁의 참극이었다.
어린 나는 생각을 많이 했을 뿐 나서서 떠들 위치도 권리도 없고 또 아는것도 별로 없었다. 전쟁이 끝나기만 바랄 뿐 이였다. 며칠후 국군들은 북으로 진격하고 우리는 다시 마을로 되돌아 왔다. 경찰들도 돌아와 치안을 회복하고 전투경찰들은 공비 토벌을 시작했다. 내무소원이었던 마을 청년 J와 K는 북으로 도망을 갔고 한때 우리집 머슴이었던 내무서원 갑칠이는 도망을 못가고 며칠간 숨어 있다가 우리집을 찾아 왔다. 그동안 굶었는지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난 후 눈물을 흘리고 있어 아버지가 자수하면 괜찮을 거라고 위로를 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일이 전혀 없었다. 그는 건강하고 잘생긴 미남이었는데 너무나 운명이 가혹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쪽 눈이 없는데다 직업은 개를 잡는 개백정 이였고 어머니는 벙어리였다. 갑칠이는 태어날 때 부터 가난 때문에 고통을 당하며 친구도 없이 자란후 머슴살이를 하는등 역경을 겪다가 인민군 치하에서 내무소원이란 직책을 부여 받고 법을 집행하게 된 불행한 운명의 사나이다.
그가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하고 나가는 뒷모습이 저승사자를 따라가는 것 같이 어둡고 애처로웠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가 총살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공산당이 무엇인지 이념과 사상이 무엇인지 내무소원의 임무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총 메고 활보 할 수 있는것이 좋고 신이 났던 무지한 사람이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전쟁의 희생양 이다.
38선과 임진강 변에 있는 가월리와 주월리는 옛 삼국 시대부터 전쟁터였다. 임진강이 기역자로 꺾여 돌아가는 지점에 샛강이 생기고 가물 때는 사람과 우,마차가 건너 다닐 수가 있어 6.25 남침 때도 강물이 말라 인민군과 중공군 UN군이 전진 후퇴를 거듭하며 피로 물 들었던 격전지다. 나는 그 처절한 비극의 현장에서 기적 같이 살아난 행운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