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액 벌금의 문제
부유층에 처벌 의미 전혀 없어
경범죄에도 저소득층은 파탄
●소득별 차등제가 대안
핀란드선‘일당 벌금’으로 부과
점진적 벌금제 미국 도입하면
투옥 만연한 고질병 해소 도움
북가주 소재 페이스북 본사의 마크 저커버그 회장과 이 회사에서 일하는 청소부가 각각 퇴근길에 집으로 운전하여 가는 도중 과속 티켓을 받았다고 치자. 두 사람은 똑같은 액수의 벌금을 부과받을 것이다. 그 돈은 저커버그에게는 껌값도 안 되겠지만, 청소부에게는 허리가 휘어지는 큰돈일 수 있다.
경제적 여유가 없이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경범죄 벌금도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를 제때 납부하지 못하면 부채의 악순환에 허덕이거나 심지어 투옥되기도 한다. 한 예로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던 흑인 여성이 151달러의 주차위반 티켓 하나 때문에 7년 동안 수차례 법정 출두에다 체포 영장까지 발부된 후 결국 지불불능으로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미전역에서 벌금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일괄 적용된다. 판사가 재량권을 가진 곳에서도 최소액수와 최대액수가 정해져 있고, 어떤 주들은 아예 개인의 소득 수준에 대한 고려를 금지하고 있다. 재정적인 고려가 허락된 법원에서도 그런 배려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벌금 적용에서 더 분별있는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핀란드와 아르헨티나는 거의 100년 동안 개인의 수입에 기초한 벌금을 부과해왔다. 가장 흔한 모델이 ‘일당 벌금’(day fine)으로, 그 사람의 하루 임금을 제재액수로 부과하는 것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등의 작은 경범죄로 걸리면 하루 임금의 얼마를 내야 한다. 심각한 범죄에 대해서는 한달 치 월급이 부과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수입에서 같은 비율로 지불하는 것이다.
모든 범법자를 똑같이 다뤄야하는 사법제도에서 소득에 따라 벌금을 정하는 것은 기본적인 공정성의 문제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액수를 지불하는 것이 겉보기에는 공평해 보이지만 그 액수가 그 사람의 생활에 어떤 결과를 미치는지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정액 벌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재정적 파탄으로 위협하는 한편, 부자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쉽게 다시 법을 어기게 되어 처벌의 의미가 없어진다. 처벌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느껴져야 공정한 것이다. 처벌이란 법을 어긴 사람에게 고통을 주려는 사회적 소망의 표현인데, 부유한 범법자들의 경우 슬쩍 건드리기만 하는 처벌은 그 목적 자체를 비웃는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정액 벌금은 기본적인 처벌 목표인 응징이나 제지의 효과가 거의 없게 된다.
또한 처벌이란 애초에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 정액 벌금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부유층을 가장 해이하게 만든다. 부자들이 운전 중에 교통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도 나와 있다.
차등 벌금은 더 공정한 기소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퍼거슨 시처럼 부유한 주민들에게는 관대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현금 젖소(cash cow) 짜내듯 대우하는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소득 수준에 따른 차등제를 실시한다면 부유한 운전자들로부터 끌어들이는 돈으로 오히려 시가 더 큰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벌금 제도에 변화가 오는 것이 시급하다. 쓰레기 버리기와 같은 경범죄의 벌금이 엄청난 부채가 되어 생활이 위협당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감옥에 가야하는 중범죄도 벌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석방된 후 그 부채를 갚지 못하는 많은 전과자들의 재활의지와 희망을 꺾어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점진적 벌금(progressive fines)은 투옥이 만연된 미국의 고질병을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벌금이 감옥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유한 사람들을 벌할 만큼 높은 벌금이라면 가난한 사람들은 파멸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에게 타격이 될 만한 벌금을 물리는 것은 감금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독일이 소득에 근거한 벌금을 부과하는 쪽으로 이동한 후에 절도나 폭행과 같은 비교적 경미한 범죄에서도 단기 징역형이 감소했다.
그렇다면 저커버그에게 100만달러 짜리 스피드 티켓을 떼야 한다는 말일까? 핀란드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실제로 2015년 제한속도보다 14마일 빠르게 달린 한 사업가에게 6만7,000달러짜리 과속 딱지를 발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다른 나라들도 천문학적 벌금 제재를 막기 위해 대개는 상한액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일당 벌금제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는 미국은 점진적 벌금제가 더 효과적일 것이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스태튼 아일랜드를 선두로 소수의 지역들이 이 아이디어를 실험한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은 점진적인 벌금이 부채 징수율을 높이고, 영장 발부와 체포, 법정 출두와 같은 부수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부의 세입도 증가하는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형사상 법적 부채의 부담을 낮출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실험은 잘못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 문제였다. 당시는 범죄에 대해 초강경한 정서가 미국을 휩쓸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점진적 벌금제의 시도는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못가 폐지되고 말았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사법제도 개혁과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한 범국가적 운동이 활발한 지금이야말로 점진적 벌금제를 도입할 적기인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소득 격차가 큰데도 일괄적으로 같은 벌금이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림 Laurie Rolli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