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먼 이병 유해 1일 애틀랜타 도착
1950년 11월 전투투입 뒤 67년 만
유족들 · 청혼녀 마중 '회한의 눈물'
한국전에 참전했다 실종됐던 애틀랜타 출신 미군이 유해가 돼 1일 67년 만에 애틀랜타 공항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미 육군 이병 라말 유진 뉴먼이 그 주인공이다. 애틀랜타 남쪽 그리핀 출신인 뉴먼 이병은 1949년 육군에 입대해 한국전에 참가했다. 보병 2사단 9연대 1대대 B중대 소속이던 그는 1950년 11월 27일 평북 구장에서 벌어진 전투에 투입됐다가 실종됐다.
그의 부모와 가족들은 포로로라도 살아 있기 만을 간절히 원했지만 1956년 미군은 뉴먼을 사망자로 추정했다. 그러나 유해는 찾을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뉴먼의 부모와 형제들은 모두 사망했고, 이젠 유가족은 8명의 조카만 남아 있게 됐다.
그러던 중 뉴먼의 유해는 지난 2000년 북한의 한 논에서 농부에 의해 다른 여러 유해들과 함께 발견됐다. 하와이로 옮겨진 유해는 오랜 감식 및 유전자 대조 과정을 거친 끝에 지난해 11월에야 유족들에게 신원확인 사실이 통보됐고 지난 1일 67년만에 고향 애틀랜타로 돌아오게 됐다.
성조기로 덮여진 관 속에 누워 애틀랜타 공항을 통해 고향 땅을 밟은 뉴먼의 유해는 가족은 물론 민관군의 엄숙한 호위 속에 고향 그리핀으로 이송됐다.
맞조카인 도니 닷슨은 “삼촌은 나라와 자유를 위해 먼 이국 땅에서 전사했다”며 “이제 삼촌은 그가 자란 동네에서 1마일 떨어진 곳에 안장될 것이며, 우리 가족도 수많은 의문점의 마침표를 찍게 됐다”고 말했다.
뉴먼이 전쟁에 참전 하기 전 청혼했던 여인 캐롤 모리스도 1일 뉴먼의 유해 송환 장소에 나왔다. 그녀는 “슬프지만 그가 돌아와 기쁘디”라며 “너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뉴먼 이병의 묘지 안장식은 2일 그리핀 소재 오크힐 묘지에서 거행됐다. 한국전 참전 미군용사 7,700여명은 아직도 실종자로 분류돼 있다. 조셉 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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