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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지금, 만추의 향연

지역뉴스 | 라이프·푸드 | 2017-11-10 10: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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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만 단풍일까, 이맘때 ‘산이 불탄다’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다. 눈부신 봄과 화려했던 여름의 기억 훌훌 털어내고 무채색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 전국의 산자락은 마지막으로 가장 화려하게 치장하고 색의 향연을 펼친다. 아름다움은 경계에 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색과 빛은 선명하게 갈라지고 모호하게 겹친다.

평창과 강릉 사이,

대관령면~안반데기~노추산 모정탑

여행지로서 강릉은 자연스럽게 바다를 떠올리지만, 평창 대관령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왕산면 대기리는 전국에서도 가장 높은 지대에 마을을 형성한 곳이다. 해발 1,100m에 자리잡은 안반데기 마을은 명실공히 하늘 아래 첫 동네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IC에서 횡계읍내를 통과하면 2018 평창올림픽 주무대인 용평리조트다. 안반데기 가는 길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도암댐으로 흘러 드는 송천을 따라 가다가 왼편 가파른 언덕으로 난 도로를 올라야 한다. 송천은 고루포기산과 발왕산 사이 좁은 물길이다. 하천을 사이에 두고 두 산자락의 색이 다르다. 양지바른 발왕산 쪽이 형형색색 화려함을 뽐내는데 비해, 응달인 고루포기산 사면은 겨울에 한발 더 다가선 상태다. 색 바랜 캔버스에 빨강에서 보라까지 여러 가지 물감을 스펀지로 엷게 두드려 놓은 듯하다. 그 파스텔 톤 수묵화의 느낌이 가을빛에 찬란한 단풍 못지 않다.

안반데기 마을은 바로 그 경사면 꼭대기다. 지그재그로 연결된 도로를 끝까지 오르면 산은 멀어지고 시야가 툭 트인다. 이곳 지형이 떡을 칠 때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 판, 즉 안반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안반데기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1965년경 화전민들이 구황작물을 심으며 농지와 마을을 개척했고, 1995년 무렵부터는 전국 최고의 고랭지 채소 산지로 자리잡았다. 가파른 산비탈을 대규모 농토로 일군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경이롭다.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동해까지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는 ‘멍에’라 이름 지었다. 쟁기를 채운 소의 힘을 빌려 비탈밭을 개간한 고난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지금은 당연히 소형 굴삭기와 트랙터 등 농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풍력발전기를 연결하는 길 어디를 걸어도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이다. 뿌옇게 안개가 내려앉은 골짜기 너머로 백두대간 능선이 힘차게 뻗어 내린다. 채소 수확이 끝나 푸른 배추밭은 볼 수 없지만 스산하지 않다. 비료작물로 심은 호밀이 파릇파릇하게 초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밭 주변을 울긋불긋한 단풍이 감싸고 있어, 가을과 겨울 사이 풍경이 묘한 매력을 풍긴다.

안반데기의 행정지명은 왕산면 대기4리, 도암댐에서 올라온 길 맞은편으로 내려가면 산속의 넓은 터, 대기(大基)1~3리로 이어진다. 이곳 역시 해발 800m의 고원이다. 강원도감자원종장이 위치해 전국에 씨감자를 공급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기리에서 415번 지방도를 따라 정선 아우라지 방향으로 내려가면 노추산 모정탑길을 만난다. 모정탑길은 차옥순 할머니가 집안의 액운을 막기 위해 1985년부터 25년간 쌓은 3,000기의 돌탑이 이어진 계곡 산책로다. 여기에 관광객들이 재미 삼아 혹은 정성을 모아 하나 둘씩 쌓아 올린 돌탑까지 더해 계곡 입구부터 약 1km에 이르는 산책로 양편으로 자연스럽게 돌탑이 형성됐다. 관광지로 조성하면서 매끈하게 잘 쌓은 돌탑도 있지만, 아무래도 허술하고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돌 무더기에 더 눈길이 간다. 삶이 늘 행복으로 충만하다면 간절함도 사라지는 법, 바닥까지 굴러 떨어졌다가 다시 희망을 찾는 과정이 세상살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돌이 많은 지형이어서 바닥이 고르지 않다는 점만 빼면, 산책로는 경사가 거의 없어 누구나 편히 걸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소나무가 많지만, 사이사이에 섞인 활엽수가 익을 대로 익은 가을 정취를 한껏 더하고 있다.

최근 노추산 모정탑길과 안반데기를 연결하는 걷기길인 ‘아리바우길’이 새로 개설됐다. 동계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정선ㆍ평창ㆍ강릉 3개 도시를 연결한 길이다. 정선오일장을 출발해 대관령을 거쳐 경포해변까지 이어지는 132km를 9개 코스로 나눴다. 모정탑 구간은 정선 구절리역에서 배나드리마을까지 연결되는 아리바우길 3코스에 속한다. 배나드리마을에서 송천 물길을 거슬러 바람부리마을과 안반데기로 이어지는 구간은 4코스에 포함된다.           <3면에 계속>

<평창ㆍ강릉=최흥수기자>

정선과 태백 사이,

민둥산~운탄고도~만항재

정선 신동에서 고한에 이르는 고지대는 대한민국 석탄산업과 영욕을 함께한 지역이다. 수도권에서 태백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자, 강원랜드로 가는 38번 국도를 타고 신동읍 마차령을 넘으면 화려하게 가을 색으로 치장한 산과 계곡이 도로 양편으로 펼쳐진다.

딱히 어디라 할 것 없이 시선 가는 곳마다 눈이 호강이다.

숲의 아름다움은 어울림에 있다. 다양한 수종이 자연적으로 형성한 산림과 인공조림이 뒤섞여 세상의 모든 색을 조화롭게 버무렸다. 늘 푸른 소나무, 노랗게 사그라지는 낙엽송(잎깔나무)과 자작나무, 만산홍엽의 대명사 단풍나무 종류, 올해 유난히 색이 고운 참나무까지 황홀경을 연출한다. 한국의 산하가 이렇게 아름다웠을까 절로 감탄하게 된다. 차창으로 펼쳐지는 가을 풍경만으로도 눈부시지만, 샛길로 한 발짝 들어서면 여행이 한층 풍성해진다.

우선 남면 무릉리 민둥산은 대표적인 억새 산행지다. 민둥산(1,118m)은 이름처럼 7부 능선부터 정상까지 나무가 거의 없고, 완만한 구릉에 억새가 뒤덮여 있다. 산나물이 많이 자라라고 매년 한번씩 불을 질러 왔기 때문이란다. 10월 중순부터 억새 천국으로 변하는 20여 만평의 평원에선 해마다 축제가 열린다. 올해 축제는 지난 주말 끝났지만 억새는 11월 초순까지 볼 수 있다. 속살까지 파고든 가을볕에 온몸을 하얗게 태우는 억새 군락이 장관을 연출한다.

등산로는 증산초등학교나 능전마을에서 출발하는데,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아 1시간30분 이상 잡아야 한다. 정상 전망은 어느 방향으로나 그 수고로움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힘들게 올라온 무릉리 마을이 한발 내디디면 바로 닿을 듯하고, 단풍으로 물든 주변의 우람한 산세와 하얀 억새평원이 대조를 이룬다.

민둥산에서 맞은편으로 펼쳐지는 1,000m급 능선에는 지금은 차가 다니지 않는 산중도로가 숨어 있다. 이름하여 운탄고도(運炭古道)다. 만항재에서 함백역까지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든 40km의 옛길로, 운치가 워낙 뛰어나 최근에는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지는 옛길(雲坦古道)’라는 그럴듯한 해석도 덧붙여졌다.

입구는 강원랜드 호텔 못 미쳐 ‘화절령길’로 들어서면 되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길 찾기 앱에서 ‘사북리 산155-80’으로 검색하면 포장도로가 끝나는 화절령삼거리까지 안내한다. 화절령은 꽃을 꺾으면서 올라가는 고개라는 의미로 그만큼 야생화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삼거리에서 백운산 정상 방향으로 약 2km를 오르면 능선 부근에 자그만 연못이 숨어 있다. 낙엽송이 주변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도롱이 연못’이다. 1970년대 갱도 지반침하로 생긴 연못으로, 광부의 아내들이 이곳에 서식하는 도롱뇽을 확인하며 남편의 안전을 기원했다고 한다. 탄광사고가 잦았던 시절, 안전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무엇 하나 예사로 넘길 수 없었던 것이 광산촌 주민들의 삶이기도 했다.

도롱이 연못에서 만항재 방면으로 조금만 발길을 옮기면 ‘1177갱 입구’가 나온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갱도로 해발고도가 곧바로 갱도 이름이다. 도시락을 든 광부 동상이 세워진 길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면 울긋불긋한 영월 중동면의 산세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운탄고도는 석탄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다녔던 만큼 도로 폭은 충분하지만, 노면이 고르지 못해 차체가 낮은 승용차로 오르기는 무리다. 이따금씩 드나드는 대형 공사차량과 마주칠 경우 후진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운탄고도로 들어서는 화절령길 초입의 ‘사북 석탄유물종합전시관’은 탄광도시 사북ㆍ고한의 진면목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2004년 문을 닫은 동양 최대 규모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건물에 광부들이 사용했던 안전용구와 집기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타일 사이 석탄 때가 지워지지 않은 샤워장엔 광부의 모습과 그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광부를 실어 나르던 ‘인차’를 타고 650갱에 들어가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관람과 체험이 모두 무료지만 전시나 운영이 체계적이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인차 탑승체험도 관람객이 적은 날은 운영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만항재 방면으로 약 10km 떨어진 삼탄아트마인은 똑같은 공간을 문화예술단지로 꾸몄다. 2001년 폐광된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시설에 150개국에서 수집한 예술품을 전시하고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외형을 그대로 유지한 4층 건물 내부를 카페와 전시실로 꾸몄고, 야외에는 레스토랑과 기억의 정원 등을 조성했다. 광부를 실어 나르던 수직갱도 타워를 외부 전시장으로 나가는 통로로 활용한 점도 인상적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 장소로도 이용됐다. 입장료는 성인 1만3,000원.

삼탄아트마인 인근에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 정암사가 자리잡고 있다. 좁은 터에 작은 절이지만 석가모니의 사리를 보유한 사찰이다. 수마노탑에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어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은 절로도 유명하다. 수마노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은 모전탑으로, 석영의 일종인 수마노(水瑪瑙)석을 정교하게 잘라서 쌓아 올렸다. 적별보궁 뒤편 가파른 언덕에 자리하고 있지만 정암사를 들르는 이들은 꼭 찾는 곳이다.

정암사에서 함백산 자락으로 난 도로를 10여분 거슬러 오르면 국내에서 차로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1,330m) 정상이다. 한여름 뒤늦은 야생화로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나면, 가장 먼저 가을을 맞는 곳이기도 하다. 이미 활엽수는 대부분 잎을 떨궜고, 낙엽송 군락만이 노랑에서 주황으로 짙어지고 있다. 흙 길이 폭신폭신한 그 숲의 짧은 산책로를 걸어도 좋고, 군데군데 놓인 벤치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펼쳐놓고 소풍을 즐기기도 그만이다. 바로 코앞에 보이는 함백산(1,572m) 정상은 가을의 화려함 모두 털어내고 벌써 겨울로 접어들었다.

내 고향은 지금, 만추의 향연
내 고향은 지금, 만추의 향연

강릉 왕산면 대기리 도로변의 자작나무 숲. 강원 고산지대에서는 대규모는 아니지만 자작나무 숲을 흔히 볼 수 있다. 노란 잎이 떨어지고 하얀 줄기를 드러내면 더욱 매력적이다.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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