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서유럽’(12일) 투어의 다섯번째 날은 스위스에서 맞이하게 된다.
지난 밤 찾은 언덕 위 산장호텔은 이른 아침에 보니 더 환상적이다. 그림같은 호수와 산맥을 병풍처럼 두르고 알프스의 풍취가 진하게 스며있다. 신선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여마셔본다.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환경이다. 괜스레 떠나기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오늘은 스위스의 풍요로운 대자연의 속살로 다가가는 날이라 발길을 재촉해본다.
▶스위스 속 작은 스위스, 루체른
여행가들을 반기는 루체른은 스위스 중부에 위치한 작은 관문도시다. 산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리기산(1800m), 필라투스산(2120m), 티틀리스산(3020m)으로 둘러싸여 있고, 빙하가 녹은 호수가 에메랄드처럼 반짝인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대자연과 역사 깊은 건축물이 잘 어우러져 있어 ‘스위스 속의 작은 스위스’라 불린다.
도시는 로이스강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어 있는데 북쪽에 중앙역이 위치하며 남쪽에 구시가가 펼쳐진다. 특히 남쪽 구시가 호수 주변으로 16세기에 번성했던 예술기법으로 채색된 벽화들이 좁은 골목과 광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눈길을 잡아끄는 상점과 부티크들도 즐비하다. 봄부터는 호수에 보트 행렬이 이어지며, 호수 주변으로는 전형적인 스위스풍 건축물과 지중해 경관이 어우러져 운치가 넘친다. 서퍼들은 파도를 타고, 호수 유람선들은 증기를 뿜어내며, 형형색색의 패러글라이더들이 하늘에 수를 놓는다. 산악철도와 케이블카는 방문객을 산 정상까지 안내한다.
루체른역에서 도보로 2~3분 거리에 위치하는 ’카펠교’는 루체른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카펠교는 1333년에 세워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로 길이가 무려 280m다. 나무 다리 위에 붉은 고깔 모양 삼각지붕을 얹은 카펠교는 들보에 루체른의 역사와 수호성인을 그린 110점 정도의 판화가 걸려 있다. 1993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이듬해 완전하게 복원됐다.
카펠교 중간에 솟은 높이 34m의 팔각탑인 ‘워터 타워’는 1300년 도시 성벽의 일부로 건축됐다. 예전에는 망을 보던 망루였다고 한다.
카펠교를 건너면 루체른 호수가 나온다. 길이 133km, 최대 수심 213m·총면적 114㎢의 루체른 호수 위로 우아한 백조들과 외륜선이 사이 좋게 떠다닌다. 꼭대기에는 눈 덮인 리기와 필라투스 산의 파노라마 풍경이 펼쳐진다.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자연 경관 덕분에 노 젓기 및 배타기 경기대회, 경마 및 장애물경기, 국제음악제, 사순절 전의 전통적 축제 등 연중 예술 행사가 끊이지 않고 열린다.
’빈사의 사자상’(토르발트젠 작·1821년)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념물 중 하나다. 작은 연못을 사이에 두고 회색빛 사자가 등에 창이 박힌 채 부르봉 왕가의 상징인 흰 백합의 방패를 지키며 죽어가는 모습을 자연 암벽을 조각해 만들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자는 1792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던 당시 스위스 용병들이 그들을 고용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키다가 고통스럽게 죽어간 모습을 상징한다. 이 사자상에는 그 당시 전사한 786명의 스위스 병사 이름이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새겨져 있다.
▶제임스 본드와 쉴튼호른
이어지는 일정은 한인 여행업계 최초인 동시에 스위스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중부지역을 약 2시간 동안 파노라마식 창문열차로 즐기는 ‘골든패스(GOLDEN PASS)’ 열차에 탑승해 알프스의 진수를 만끽하며 인터라켄으로 이동하게 된다.
인터라켄은 ‘호수 사이’라는 의미다. 알프스 빙하가 녹아 이뤄진 호수 브리엔츠와 툰 사이에 자리 잡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터라켄은 융프라우 철도를 타기 위한 출발점으로 언제나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그들을 가장 많이 마주칠 수 있는 곳은 쇼핑거리인 회에벡 거리다. 인터라켄에서 가장 많은 스위스 시계 브랜드를 판매하는 키르호퍼 카지노 갤러리, 초콜릿의 명가 슈 레스토랑을 비롯해 유일한 카지노와 공연장인 카지노 쿠어잘, 특급호텔까지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시설들이 대부분 이곳에 자리한다.
융프라우 지역의 3개 영봉인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요흐를 한 눈에 감상하려면 쉴트호른 전망대가 제격이다.
쉴튼호른 하면 영화 007이야기를 빼놓을 수없다.
1962년부터 2015년까지 24편이 제작된 ‘제임스 본드 007’ 시리즈는 시대를 풍미한 미남 배우들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첩보 스릴러 영화다. 그중에서도 조지 라젠비(George Lazenby)가 본드 역을 맡은 007시리즈 6탄 ‘여왕폐하 대작전’을 기억하시는지… 지금까지도 007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박진감 넘치는 스턴트 장면으로 꼽히는 스키 활강 총격 신이 이곳 쉴트호른에서 촬영됐다.
쉴트호른까지는 초대형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다. 쉴트호른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연결한 사람은 뮈렌 출신의 에른스트 포이츠(Ernst Feuz)다. 그가 처음 자신의 구상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미쳤다’고 했다고 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쉴트호른은 이미 등산 철도나 케이블카의 설치가 불가능한 봉우리로 평가가 내려진 뒤였다. 19세기부터 스위스 최고의 전망 좋은 봉우리로 정평이 나 유럽 각국의 산악인들이 몰렸지만, 지형 조건이 철로를 놓고 케이블을 가설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이츠는 기술적인 난관을 모두 극복하고 1967년 쉴트호른 케이블카를 완공시켰다. 산 아래 슈테헬베르크(922m)에서 출발해 김멜발트(1400m), 뮈렌(1634m), 비르그(2677m)에서 3번을 갈아타야 쉴트호른 정상에 도달하는 알프스 최장의 케이블카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듬해 007 시리즈가 촬영되면서 쉴트호른은 세계적인 여행지로서의 명성을 더욱 확고하게 다졌다.
포이츠 덕분에 전세계에서 모인 여행가들은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두 발 아래 펼쳐지는 알프스의 환상적인 뷰를 감상하며 손쉽게 해발 2971m 정상 쉴튼호른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다.
정상에는 세계 최초의 360°회전 레스토랑인 피츠 글로리아(Piz Gloria)가 있다. 이곳에서 럭셔리한 식사를 즐기며 융프라우(Jungfrau, 4158m), 묀히(Moench, 4107m), 아이거(Eiger, 3970m) 등 쟁쟁한 영봉들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다. 융프라우를 비롯한 영봉들은 이렇게 두 눈으로 봐야 한다. 모두가 숨죽여 알프스의 감동적인 풍광을 즐긴다.
전망대에는 또한 피츠 글로리아 외 전시공간인 ‘본드 월드’도 있다. 007시리즈 영화 속 다양한 장면을 불러 사진을 남기고, 헬리콥터와 봅슬레이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쉴트호른 전망대에 착륙하거나 악당을 쫓아가며 총격전을 벌이는 등의 다양한 액티비티를 체험해볼 수 있다.
또한 쉴트호른과 뮈렌 마을의 중간 기착지인 비르그는 여행가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이다. 해발 2677m 깎아지른 절벽 위 ‘스카이라인 워크 전망대’에서 융프라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기본이다. 전망대 아래로는 ‘스릴 워크(Thrill walk)’ 체험길이 깎아지른 절벽에 걸쳐 있다. 너비 1.2m 거리 약 200m의 말 그대로 절벽에 매달려 있는 산책길이다. 유리바닥(코스중 약 20m)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를 감상하며 걷고, 둥근 철망 터널(9m)을 기어가다 보면 하늘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해발 1,600m에 위치한 알프스의 산 속 마을에서 30분 정도 트레킹을 즐기는 시간도 마련돼 있다.
기차로, 케이블카로, 톱니열차로 여행자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아로새겨주는 스위스다. 그 뒤를 이어 꼬모호수, 밀라노, 베니스, 볼로냐, 피사, 피렌체, 끼안치아노테르메, 몬테풀치아노, 로마,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의 이탈리아 여행이 우리를 기다린다.
스릴워크. 절벽에 매달린 아찔한 산책길. 유리바닥과 둥근 철망 터널이 알프스를 배경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