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 박탈감 최고
20명 자산 GDP 12% 차지
서민 고물가·임금 정체
실질 수입은 하락세로
미 경제가 겉으로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많은 미국인들은 경제가 자신들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다. 임금의 실질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초부유층의 자산은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 경제의 모순을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에 주목했다. 연방 노동통계국은 지난 10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해 근로자들의 지난 1년 반 동안의 임금 상승 효과가 사실상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불과 이틀 뒤인 12일에는 스페이스X가 상장하면서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세계 최초의 ‘1조 달러 자산가’가 됐다.
이 같은 극명한 대비는 왜 많은 미국인들이 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소수의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를 축적하는 반면, 대다수 가정은 집을 사거나 자녀를 키우고 안정적인 은퇴를 준비하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있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스테파니 스탄체바는 “사람들은 주식시장의 상승을 보며 자신도 함께 잘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자신이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불평등은 미국에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최상위층의 부의 폭발적 팽창은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수준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가브리엘 쥐크망과 에마뉘엘 세의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말 소수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하며 극심한 빈부격차가 만연했던 시절, 미국 최상위 부자들의 순자산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약 3%에 해당했다.
오늘날 상위 0.00001%, 즉 약 20명의 순자산은 연간 GDP의 12%에 달해 당시의 4배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반면 일반 가계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 가정의 절반 이상이 주식이나 은퇴계좌를 통해 증시 상승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산 가치보다 월급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국민소득 비중은 수십 년째 감소하고 있으며 올해 1분기에는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이란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상승률은 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물가를 반영한 실질 시간당 임금은 3개월 연속 하락하며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동안의 임금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경제적 불안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심화됐다. 팬데믹으로 인한 대규모 실직, 40년 만의 최고 물가상승, 고금리, 관세 인상, 경기침체 우려 등이 잇따르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
여기에 인공지능(AI)까지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 업계는 AI가 사무직 일자리 상당수를 대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근로자들이 자신의 직업 안정성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또한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전기요금 인상과 수자원 부족, 환경오염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I 붐으로 탄생한 새로운 초부유층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다.
최근 증시 상승을 이끈 기업들은 대부분 AI 관련 기업들이다. 스페이스X 상장은 AI 관련 대형 기업공개(IPO)의 시작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번 상장만으로도 수천 명의 백만장자와 여러 명의 억만장자가 새로 탄생했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의 글렌 허버드 교수는 “기술 재벌들이 ‘우리의 혁신이 당신의 삶을 바꿀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일자리를 없앨 것’처럼 이야기해왔다”며 “대중의 반발이 나타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AI 열풍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부 전문가들은 스페이스X를 비롯한 AI 기업들의 높은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보고 있다.
만약 AI 거품이 꺼질 경우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401(k) 은퇴계좌와 대학 학자금 저축계좌에 들어 있는 수조 달러 규모의 자산 가치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결국 근로자들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AI가 성공하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고, AI가 실패하면 은퇴 자산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