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등 서구 선진국
물가, 임금상승보다 높아
이란 전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서구 선진국들의 노동자 실질임금이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6일 보도했다.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운송의 요지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폐쇄되면서 주요국의 휘발유 가격과 항공 운임 등이 잇따라 올라 대중의 지갑이 얇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FT에 따르면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8%를 기록했지만, 4월 시간당 평균 임금 상승률은 3.6%에 그쳐 2년 만에 처음으로 물가 상승 속도가 임금 인상 속도를 앞질렀다.
KPMG 다이안 스웡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글로벌 공급망을 크게 훼손해 호르무즈 해협이 당장 내일 재개방된다고 해도 물가는 이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노동자도 고통이 크다. 올해 1∼3월 영국의 실질 임금(보너스 제외)은 평균 0.1% 오르는 데 그쳤다. 고용 시장이 위축된 만큼 향후 물가가 더 오르면 실질 임금은 본격적 하락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1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번 중동발 에너지 공급난은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당시 닥쳤던 인플레이션 쇼크에 이어 유로존 노동자들에게 제2의 대형 악재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컨설팅 업체인 팬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클라우드 비스테센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유로존의 실질 임금 상승률이 0%에 근접할 것으로 관측했다. 그는 특히 재정난이 심각한 프랑스 등에서는 소비자 보호 조처가 부족해 이미 실질 임금이 심각하게 ‘마이너스’ 상태일 것으로 봤다.
실질 임금 감소는 거시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 노동자의 가처분 소득이 줄면서 소비가 급감해 성장률 정체와 실업 문제가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같은 트렌드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이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는 유류세 감면 등의 소득 보전책을 내놓고 있지만, 전반적 임금 감소의 피해를 상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유럽은 미국과 비교해 저축을 통한 완충 효과가 크고 일부 국가에 임금을 물가상승률에 연동하는 제도가 있어 미국보다는 실질 임금 감소 충격이 전반적으로 덜할 전망이지만,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진단이다.
컨설팅 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앤드루 케닝햄 수석 유럽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이란 전쟁의 여파가 2022년의 인플레이션 파동 때보다는 훨씬 덜할 수준이지만 유로존 경제가 완만한 경기 침체에 진입할 위험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경제에 가해지는 충격이 클수록 실질 임금의 회복 속도도 그만큼 더뎌질 것”이라고 짚었다.
연방 상무부에 따르면 실제 4월 개인소비지출 가격지수(PCE)는 전년 동월 대비 3.8% 상승했다. 2023년 5월(4.0%) 이후 2년 11개월 만의 가장 큰 상승률이다. 전월 대비로도 0.4% 상승했다.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3% 올라, 2023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로는 0.2% 상승했다.
PCE 가격지수는 가계가 소비하는 재화·서비스 가격을 반영하는 물가 지표로, 연방준비제도(FRB·연준)는 ‘2% 물가상승률’이라는 통화정책 목표 달성 여부를 판단할 때 이를 기준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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