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1901~1989)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민주화·인권 운동에 헌신한 대한민국의 사상가, 교육자, 시인, 언론인입니다. '씨알(민중)' 사상을 바탕으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펼쳤으며, 시집 '수평선 너머' 등을 남긴 시인이자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저술한 역사학자이기도 합니다.
함석헌(咸錫憲)이 누구인가. 흔히 사상가이자 민권운동가 겸 문필가로 민주화 운동을 하며 3공화국 그리고 유신정부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고, ‘폭력에 대한 거부’, ‘권위에 대한 저항’ 등 평생 일관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항일 · 반독재에 앞장선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만난 것은 내 문학과 인생의 스승인 시인 이열 선생님, 원경선 목사님과의 인연 덕이었다. 두 분 덕에 뵙게 된 함석헌 선생님은 내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특히 그의 저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내게 ‘역사인식 문제’를 일깨워주기도 했다.
함석헌이 남긴 글들은 참 많다. 대부분이 기독교 사상과 관련된 것 그리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쓴 논설들이다. 그런데 그가 시도 썼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면 시라기보다는 기독교적인 가르침 혹은 삶의 지혜를 짧은 글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꼼꼼히 살펴보면 기독교란 종교를 넘어 문학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이 꽤 많다. 1947년에 발표된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가 그런 작품이다. 해방공간에서 항일과 친일 혹은 민족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사이에서 핍박받던 그의 깊은 고뇌를 읽게 된다. 물론 단순히 그런 고뇌만이 아니다. 7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읽어도 우리네 삶에 커다란 화두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