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없이 정상 키여도‘호르몬주사’맞는 아이들
연 1000만 원 육박하는 비용에도 불구 수요 급증
정상 키 아동에 투여 시 유효성·안전성 근거 없어
“키 성장도 다 때가 있다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나봐. ”
맞벌이를 하며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을 키우는 친구가 간밤에 전화로 하소연을 했습니다. 며칠 전 아들 반 친구 엄마들 모임에 갔다가 “겨울방학 시작과 동시에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히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밤잠을 설쳤다는 거에요.
주변에서 관심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호르몬 주사라 꺼름칙하기도 해서 결정을 미뤄왔는데,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아들을 보니 조바심이 난 모양이었습니다.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한 성장클리닉에 진료 예약을 걸어놨다는 걸 보니 머잖아 주사 치료 대열에 합류하겠다 싶었죠.
성장호르몬 주사는 본래 성장호르몬 결핍증 등을 앓고 있는 저신장증 환자 등을 위한 전문의약품입니다. 국내에선 키가 같은 성별, 연령의 아동 100명 중 3번째보다 작으면 성장호르몬 주사 처방 시 건강보험을 적용 받을 수도 있죠. 그런데 엄밀히 투여 대상이 아닌 데도 성장호르몬 주사제를 처방 받으려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실제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작년 5월에 발표한 성장호르몬 주사제 사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은 아이 6명 중 1명은 평균보다 키가 큰 데도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험 급여 기준에 해당하는 아이에게 호르몬 주사를 처방한 사례는 41%에 그쳤죠. 자녀의 키를 1㎝라도 더 키우고 싶은 부모 세대의 열망 속에 불필요한 성장호르몬 치료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 덕분일까요. 국내 성장호르몬 시장은 저출생에도 불가하고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내 의원급 병원과 약국에 공급된 성장호르몬제는 2020년 39만 430개에서 2024년 113만 275개로 4년새 약 2.9배나 늘었습니다. 치료가 시급한 질병이 아니라 정상 범위의 아이들이 키를 더 키우기 위해 맞는 비급여 처방이라 가격 부담도 만만치 않은데요.
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 성장호르몬 주사 투여 비용은 월평균 약 60만~80만 원, 연간으로는 1000만 원에 육박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성장기 시력 교정을 돕는 드림 렌즈, 치아 교정과 함께 ‘3대 부모 등골 브레이커’라는 우스갯 소리가 나올 정도죠. 일주일에 한 번 맞는 최신 제품도 출시됐는데, 작용 기전이 동일하다보니 매일 맞더라도 가격 경쟁력과 공급 안정성을 갖춘 기존 국내사 제품들의 선호도가 여전히 높습니다.
문제는 질병이 없는 정상 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장호르몬 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담보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자녀의 키는 부모 양측의 평균 키 등 유전적인 요인을 따져 예측할 수 있으나 꼭 들어맞진 않습니다.
오히려 호르몬 과다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3년 성장호르몬 제제 관련 부작용 신고 건수는 1626건으로 2019년(436건) 대비 3.7배 급증했습니다. 그중 실신, 발작, 말단비대증, 척추측만증 등 중대한 신경계 장애와 함께 영구 장애·사망에 이른 사례도 113건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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