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어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글쓰기라는 공통된 취미 때문에 처음 만난 순간에 늘그막 친구가 되리라 직감했었다. 안타깝게도 친구는 몇 년 전에 뇌졸중을 겪은 후 편마비로 불편한 일상을 지내고 있다. 거동이 어려우니 넘어지는 사고도 잦다. 이번에는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허리를 삐끗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친구의 남편이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섰다. 몇 달 동안 묵은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그가 아내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허리는 사진을 찍어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자포자기 한 듯 누워만 있으려하는 아내를 보면 속상하다는 남편의 고자질에 자존심 상한 친구가 용수철 같은 반격을 가했다. 이 와중에도 신혼부부처럼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수 년 전 의식을 잃고 수술을 기다리며 병상에 누워 있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를 살려내려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쥐어짜냈던 친구의 남편이 지금 환하게 웃고 내 앞에 서 있다. 기적 같다. 아내의 병수발을 시작한 후 사업도 정리하고 간병에만 매달렸다. 아내가 하루빨리 병석에서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남편의 모습이 고맙기만 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친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근래에는 글 쓰는 꿈을 꾸다가 가위에 눌려 잠을 깨면 다시 잠들 수 없어 밤새 고생한다는 이야기였다.
"내 평생 사는 동안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왜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걸까? 정말 다시 글 쓰며 살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듣게 될까 내심 기다렸던 말이었다. 문학을 전공했고 문인이 되기를 희망했었던 그녀의 심정을 어찌 모를까. 그러나 내 입에선 따스한 위로의 말보다는 얼음장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야. 글이란 게 누가 대신 써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누워만 있는 데 어떻게 글이 써지겠어? 정말 글이 쓰고 싶으면, 누워 있지 말고 일어나 앉아서 허릿심을 키우든, 컴퓨터 자판이라도 두드릴 수 있게 손목의 힘이라도 길러야 하지 않을까?"
오래 전 나도 생사의 기로에서 헤맸던 적이 있었다. 지인들의 흔한 위로와 주변의 진정성 없는 동정에 상처 받았던 기억이 있다. 핑계 같지만, 친구를 자주 찾아가지 않았던 건 바쁜 내 일상 탓도 있지만, 건강한 내 모습이 이 친구의 투병을 더 외롭게 하면 어쩌나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만큼 아파보았다는 동병상련의 경험을 빌미로 한 번쯤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던 것인지 친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병문안을 마칠 무렵엔 침대 옆 의자에 옮겨 앉았다. 나를 배웅하는 친구의 얼굴에 마치 예전처럼 생기가 돌았다.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나라.”고 했다. 그렇다. 땅을 짚지 않고서는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잠든 사이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가위눌림처럼, 불행은 예상조차 할 수 없이 삶을 덮치는 사건이다. 가위눌림에서 벗어나려면 꿈에서 깨어나야 하듯,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불행을 깨달아야 다시 설 수 있다는 것을 더 늦기 전에 알았으면 좋겠다.
친구야. 지금 아무리 눈앞이 캄캄해도, 세상을 떠나야했던 사람들이 절실하게 살고 싶어 했던 순간이 바로 지금 아니겠나. 아무리 힘들어도 내 앞에 살 길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자. 오늘이 바로 내게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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