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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푼 청년이 차린 요즘 가장 핫한 강남 냉면집

한국뉴스 | 라이프·푸드 | 2025-09-17 09:54:34

강남 냉면집, 무일푼 청년이 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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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클래식 음악이 지닌 매력 중 하나는 지휘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본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클래식이 시간을 초월해 꾸준히 사랑받는 힘은 원전에도 있지만 저마다의 시각으로 곡을 풀어낸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노력에도 있다. 음식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한국 음식의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는 냉면이 지금도 인기를 끄는 이유는 냉면이란 원전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들 덕분이다. 어떤 이는 평양의 원형을 고수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육수에, 고명에, 면의 배합을 달리해 다른 울림을 만든다. 여름철 냉면집을 순례하는 이들은 지휘자에 따른 클래식 음악을 구분해 듣는 것처럼 저마다 맛의 차이를 느끼며 즐긴다.

‘우주옥'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는 서울 냉면 신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내비치는 신흥 냉면집이다. 2021년 연남동 46.28㎡(14평) 작은 공간에서 시작해 올해 청담동 280.99㎡(85평) 규모로 확장 이전한 우주옥은 ‘냉면집이 아닌 반주집'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으로 냉면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았다. 수비드(저온 조리)한 핑크빛 고기를 올린 냉면과 고기가 가득한 녹두전, 그리고 와인과 샴페인까지. 전통 냉면집의 문법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콘셉트로 냉면을 재해석한 허재훈(38) 셰프를 만났다.

 

■ 마장동 거쳐, '냉면계 이단아'로

‘냉면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허 셰프가 걸어온 삶의 궤적은 파란만장하다. 막 스무 살이 될 무렵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남은 건 단돈 17만 원이 전부였다. 생계를 위해 클럽, 바, 공사 현장까지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다 제대로 된 취직 자리를 찾으려 보니 기술도 변변한 졸업장도 없었던 그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요식업이었다. 홍대 양식집에서 시작해 프렌치 레스토랑, 대기업 패밀리 레스토랑, 호텔 연회장, 피자집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20대 후반 무렵 처음 수셰프 직함을 달았을 때 스스로를 냉정히 바라봤다. “나는 정말 재능이 없구나 싶었어요. 정해진 메뉴의 디테일 잡는 건 자신 있는데 새로 메뉴를 개발하거나 콘셉트를 바꾸는 건 너무 힘들었거든요." 평생 할 수 있는 정육 기술을 배워야겠다 마음먹고 마장동으로 향했다. 3년간 배우다 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정육하시는 분들이 좀 거칠잖아요. 어느새 저도 비슷한 언행을 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완전히 거기에 젖어버린 거죠. 그래서 그만뒀어요. 조금은 우아하게 살고 싶었거든요."

마장동을 나온 후 요식업 컨설팅 일을 하던 어느 날 을지면옥에서 혼자 냉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던 그는 문득 주변을 돌아봤다. 그곳에는 20대부터 70대까지 모든 연령층이 있었고 한두 가지 메뉴로 40년을 버텨온 가게라는 점이 새삼 눈에 띄었다. “나도 이런 걸 하면 메뉴를 안 바꾸고 적어도 40년은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이거야말로 나한테 최적화된 게 아닐까 싶은 깨달음을 얻었죠."

 

■ 냉면은 해장 국수... 반주하는 냉면집

그렇게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 우주옥을 열었다. “유명 냉면집 친인척이거나 주방장 출신도 아닌 냉면에 대한 배경이 전혀 없는 사람이 오픈한 냉면집은 아마 제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처음 오픈할 때도, 청담으로 옮긴 지금도 그가 추구하는 바는 명확하다. 식사만 하고 가는 식당이 아닌 음식과 술을 함께 즐기는 반주집이다. 냉면이나 어복쟁반에 와인이나 샴페인을 곁들이는 광경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우주옥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냉면 노포집에 샴페인을 가져가 먹는 젊은 손님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허 셰프가 해석하는 냉면의 본질은 한 끼 식사라기보다 안주와 술을 가볍게 즐기다 마지막에 입가심으로 든든하게 먹는 해장 국수, 일종의 클렌저다. 그래서 간도 세고 육향이 진한 우래옥류보다는 을지면옥류 같은 은은하면서 맑고 정갈한 육수를 선보인다. 육수의 재료도 단순하다. 국물용 소고기와 최소한의 향신채, 대파, 마늘, 양파 등만 넣고 6시간 동안 끓여낸다. 많은 냉면 마니아들이 육수를 냉면을 평가하는 척도로 삼지만 그는 육수보다는 면이 어려웠다.

“이 마음처럼 나오지 않아서 고민하다 평소 자주 다니던 냉면집에 찾아가 사장님께 사정사정했죠. 돈 안 받고 허드렛일 다 할 테니 그냥 주방에서 면 하는 거 보기만 해 달라고요." 이곳 주방에서 반죽부터 면 삶는 과정까지 지켜보며 어깨너머로 많이 배웠다. 우주옥에선 메밀과 밀을 8 대 2로 배합한 면을 너무 얇지 않으면서 적당히 탄성을 유지하는 굵기로 뽑아낸다. 은은한 육향의 육수와 씹을수록 선명해지는 메밀의 구수한 향은 젓가락을 자꾸 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 분홍빛 수비드 고명 올린, 낯선 냉면

우주옥의 시그니처가 된 수비드한 냉면 고명은 ‘우리가 언제까지 맛이 다 빠진 수육 올린 냉면을 먹어야 하나'라고 토로한 한 음식평론가의 언급에서 착안했다. 여기에 실향민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더했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통일되면 꼭 찾아가라고 하셔서 고향 주소를 외우게 했어요. 함경남도 단천군 하다면 연대리인데 부처님 좌상 밑의 연꽃을 ‘연대'라고 해요. 연못에 연꽃 하나 떠 있는 것처럼 만들어보자 싶었죠."

냉면과 더불어 인기 메뉴인 녹두전은 위대한 발명품들이 그래왔듯 우연한 계기로 탄생했다. “손이 많이 가는 만두를 대체할 메뉴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마침 제육용 오겹살을 다듬고 남은 고깃조각 1.6kg과 갈아낸 녹두 1kg이 있어서 그냥 섞어봤죠." 녹두전보다는 고기전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정도로 두툼한 돼지고기가 통째로 씹히며 바삭하게 구운 고소한 녹두전은 우주옥의 별미다. 냉면, 제육과 더불어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 중 하나다.

냉면집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을까. 그는 육체적 고됨보다 손님들의 고정관념을 꼽는다. “한식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익숙한 맛'이라고 봐요. 내가 아는 것과 맛이 다르다고 인정하면 되는데 ‘이건 가짜다, 잘못 만든 거다'라고 해버리시는 분들도 있죠." 초기부터 꾸준히 ‘면이 단단하다', ‘육수의 염도가 높다', ‘육향이 더 진해야 한다' 등 비판과 조언을 많이 받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리저리 휘둘리며 바꾸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었어요. 어차피 근본도 없는데 헤리티지를 따라가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니 어찌 되었건 이를 악물고 버티자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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