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남들과 어울리는 일이 줄어들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마음 가는 대로 때로는 계획해 놓은 대로 시간을 보내는 여유로움에 하루가 즐겁다. 살다 보니 이런 시간도 생기는구나 하면서 안락함을 즐기다가도, 문득 '이러다 정말 혼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고개를 들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바쁘게 달려온 삶에서 한 발짝 물러서니, 마음 맞는 친구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몸이 점점 쇠약해지는 것도 서글픈데, 친구마저 줄어드니 사는 재미가 예전 같지 않다. 그렇다고 억지로 사람을 찾아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이에 맞춰 홀로 지내는 연습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양로원을 운영하다 보니 다양한 모습의 늙음을 경험한다. 속마음을 감추고 남의 행동만 관찰하는 사람, 신세 한탄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 늙음을 탓하며 자신을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다. 평생 죽어라 일해 모았던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거나, 금전적인 어려움에 풀 죽어 죽지 못해 산다는 사람도 있다. 희망도 재미도 느낄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라면 차라리 본능마저 마비되면 좋으련만,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결핍은 결국 몸의 여러 곳에서 불편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건강하게 나이 드는 사람들의 삶은 무엇이 다를까? 먼저 그들은 소외감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의 모습을 인정하며 삶을 즐긴다. 주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며, 무엇이 남을 불쾌하게 하고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명확히 판단하고 받아들인다. 이것이야말로 풍부한 경험을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는 가장 좋은 증거일 것이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퇴근하는 내 모습을 본 한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젊었을 땐 다리가 저렇게 통통했었지." '내가 젊다고요?'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볼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누군가에게는 젊음의 상징으로 비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만족감은 사라지는 법이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젊은 사람을 만나면 그 젊음이 부러웠다. 나이 들어가는 현실을 젊은이를 보며 비교하고 있는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다.
삶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불변의 법칙이 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이 법칙을 거스르려 할 때 인생에 한(恨)이 생긴다. 먼저 떠난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사는 어머니나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 혹은 갑작스러운 병으로 친구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슬픔이 그렇다. 그들이 인생을 채 다 살지 못하고 떠난 것은 이 불변의 법칙을 거스른 탓일지도 모른다. 그들을 추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슬픔을 반면교사로 삼아 노년의 삶을 멋지게 가꾸는 것이 남은 자의 몫이라고 믿는다.
헤르만 헤세는 "늙는다는 건 젊다는 것만큼이나 아름답고 성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젊었을 적이었다면 늙음이 뭐가 그리 성스럽냐며 반박했겠지만, 이제는 그 늙음의 성스러움을 믿고 싶다. 과거의 화려함에 매달려 그때로 돌아가려 애쓸 필요는 없다. 늙음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잘 다듬으며 세월과 함께 가야 한다. 늙음과 맞서고 짙은 화장으로 감추려 하는 것, 이 또한 삶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 아닐까?
멋진 인생이란 남들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볼품없어진 지금의 모습을 깎고 당기며 늙음을 감추려 해본들, 내 인생의 청춘이 다시 돌아오겠는가. 삶의 여정에서 굳어진 생각들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낼 때, 비로소 우리의 인생은 가장 멋지게 빛난다. 삶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새로운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멋진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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