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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토르티야는 이런 맛" 한국 속 '멕시코 음식' 종결자

한국뉴스 | 라이프·푸드 | 2025-08-13 10:27:33

진우범 셰프, 한국 속 멕시코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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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카데리아' 진우범 셰프

 

진우범 셰프는 길거리 타코부터 파인다이닝까지 다양한 콘셉트로 국내에 멕시코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장준우 제공>
진우범 셰프는 길거리 타코부터 파인다이닝까지 다양한 콘셉트로 국내에 멕시코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장준우 제공>

 

 

외국 음식이 한 나라에서 자리 잡는 데는 크게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이국적인 이미지만 수용하고 대중의 입맛에 맞춘 '유사 변형'의 단계다. 과거 한국식 피자나 파스타 체인점, 향을 줄인 동남아 음식을 내는 대중식당들이 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진짜'를 찾는 '오리지널리티의 열망' 단계가 찾아온다. 현지 맛을 그대로 구현하는 집들이 생겨나면서 대중은 원형을 갈망한다. 마지막은 '창조적 내화' 단계다. 각기 다른 서사를 가진 요리사들이 저마다의 정체성을 투영해 외국 음식을 해석하고 재창조해낸다. 문화적 경계는 모호해지고 각각의 개성들이 꽃을 피우는 단계다.

외국 음식을 한국에서 선보이려 하는 셰프라면 필연적으로 세 단계 중 하나에 속한다. 가끔은 모든 걸 해내며 미식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이도 있다. 길거리 타코부터 멕시칸 비스트로, 미슐랭 별을 받은 파인다이닝까지 다양한 형태의 매장을 운영하며 멕시코 식문화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진우범(32) 셰프 이야기다.

 

진우범 셰프가 '페스카데리아' 주방에서 닉스타말화된 옥수수 반죽으로 토르티야를 만들고 있다. 			        <장준우 제공>
진우범 셰프가 '페스카데리아' 주방에서 닉스타말화된 옥수수 반죽으로 토르티야를 만들고 있다. <장준우 제공>

 

 

■한국서 진짜 '토르티야'를 만들다

진 셰프의 이력은 특이하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건축을 공부하다 중퇴한 후 돌연 멕시코로 향했다. 군 복무 중 진로를 고민하다 어릴 적 꿈이었던 타코 푸드트럭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내린 결정이었다. 멕시코시티에 있는 르코르동 블루에서 요리의 기초를 배운 후 멕시코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로 꼽히는 ‘푸욜'에서 근무했다. 엘리트 셰프 코스를 차근히 밟아오던 그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비자 문제로 한국에 돌아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때는 정말 막막했죠. 당장 식당을 열 형편은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할 수 있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공유 주방을 찾아가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을 들었어요." 진 셰프는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멕시코의 정체성이 담긴 과카몰리를 만들어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서울 마포구에 작은 제조 공장을 차렸다. 백화점과 인터넷 쇼핑몰에도 꾸준히 납품할 정도로 잘됐지만 아보카도 가격이 선물이나 암호화폐처럼 크게 변동하면서 제조업의 한계를 실감했다. 그때 다시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몰리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몰리노는 스페인어로 방앗간, 정확히는 옥수수를 가는 곳을 뜻한다. 목표는 명확했다. 한국에서 닉스타말화(nixtamal+化)를 제대로 한 옥수수 토르티야를 납품할 수 있는 공장을 만들고 싶었다. 닉스타말화는 옥수수를 석회수에 우려내는 멕시코 전통 조리법이다. 만드는 과정은 고되지만 이렇게 만든 옥수수로 구운 토르티야는 시중에 파는 공장제 토르티야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 난다. 멕시코 요리의 시작과 끝은 토르티야라고 봐도 무방하다.

“처음부터 토르티야 제조 사업을 벌이기엔 도저히 수지 타산이 맞지 않더라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매장을 통해 제대로 토르티야를 선보인 다음에 수요를 차근차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죠." 2021년 그렇게 문을 연 곳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엘몰리노'다. 그는 직접 만든 수제 토르티야에 제대로 만든 살사와 몰레 등을 이용해 트렌드에 어울리는 멕시칸 비스트로를 구현해냈다. 엘몰리노가 좋은 반응을 얻자 2022년 서울 중구 신당 중앙시장에 길거리 타코 콘셉트의 ‘라까예'를, 2023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멕시칸 파인다이닝 ‘에스콘디도'를 잇따라 오픈했다. 에스콘디도는 올해 미슐랭 1스타를 받았다.

“일부러 콘셉트나 브랜드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그 매장에서 뭘 얘기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했죠." 엘몰리노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멕시코 음식이 토르티야에 싸 먹는 저렴한 음식만 있는 게 아니라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하나의 퀴진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라까예는 편하고 즐거운 음식인 타코를 즐기는 문화를 만들고자 일부러 재래시장 안에 자리 잡는 전략을 택했다. 에스콘디도는 음식으로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면모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길거리 타코부터 미쉐린 파인다이닝까지

진 셰프는 정통 멕시칸을 표방하지도, 멕시코 요리의 형식에 한국적 요소를 억지로 집어넣는 ‘코리안 멕시칸'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굳이 설명하자면 ‘익스플로링 컨템퍼러리 멕시칸 퀴진(Exploring Contemporary Mexican Cuisine)'이라고 할까요. 퓨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멕시코 정통 요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노르딕 퀴진이 어떤 형식이나 요리 형태를 뜻하는 게 아니라 제철 지역 재료를 사용하고 발효한다는 정신을 뜻하는 것처럼 멕시코 퀴진의 ‘정신(spirit)'을 접시에 담아 이야기를 건네는 거죠." 탐험한다는 것, 동시대적이라는 것, 그리고 멕시코 요리라는 것. 세 단어가 만나는 지점에 그의 요리 세계가 있다.

“몰레 베르데에는 에파소테라고 하는 멕시코 허브가 필수죠. 그런데 에파소테가 없는 한국에서 지금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몰레 베르데의 형태는 어떤 것인지 고민해보는 거예요. 시장에서 다양한 허브와 채소를 맛보며 비슷한 맛을 찾아 탐험해봅니다. 꼭 이래야 한다는 틀에 갇히기보다는 음식의 경계를 조금씩 더 넓혀 나가는 거죠." 전통 레시피의 본질을 이해하고 현재 주어진 환경에서 그 본질을 구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 그가 말하는 ‘익스플로링 컨템퍼러리'의 의미다.

건축을 공부한 이력 때문일까. 그의 행보는 마치 차근차근 쌓아 올린 하나의 건물처럼 보인다. 지하에는 과카몰리와 토르티야 제조 공장이, 1층에는 편안한 스트리트 타코 ‘라까예'가, 2층에는 모던한 멕시코 요리를 선보이는 ‘엘몰리노', 3층에는 그의 철학을 구현하는 ‘에스콘디도'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보통의 셰프라면 높은 층에 머물려 할 텐데 진 셰프는 다시 시장으로 향했다.

최근 경동시장 외진 골목에 오픈한 ‘페스카데리아'는 멕시코 선술집 콘셉트다. 데킬라나 메즈칼, 맥주 등 멕시코 술도 있지만 사케도 있고 소주도 있다. 스스로 마음 편히 즐겁게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을 새로이 만들었다고 진 셰프는 설명한다. “라까예처럼 이런 서비스할 때가 훨씬 재미있죠. 그런데 또 요리로 사고하는 방식은 여기보다 에스콘디도가 재미있어요. 새로운 것을 계속하고 더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요리하는 순수한 즐거움과 예술적 사고의 성취를 함께 가져가는 그의 방식은 흔히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다.

다음 목표는 멕시코 진출이다. 흥미롭게도 한식을 기반으로 한 요리를 구상 중이다. “단순히 한식을 고스란히 이식하는 게 아니라 한국적인 테크닉을 이용해서 현지 재료들을 풀어내는 거죠. 멕시코 고추로 장을 담그는 것처럼요. 그러면 멕시코 요리뿐만 아니라 한식의 스펙트럼도 함께 넓어질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고 해보고 싶어요."

진 셰프와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금 깨닫는다. 외국 음식을 요리한다는 건 단순히 맛있게 만들어 판다는 것 너머, 문화를 전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일이라는 것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위치한 멕시코 음식점 '페스카데리아'의 '소프트쉘 크랩 타코'. <장준우 제공>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위치한 멕시코 음식점 '페스카데리아'의 '소프트쉘 크랩 타코'. <장준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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