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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사실의 비밀, 카메라 옵스큐라

미국뉴스 | 라이프·푸드 | 2025-08-06 09:29:01

휴·미·락, 극사실의 비밀, 카메라 옵스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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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味·樂(휴·미·락)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는 미술사에서 가장 신비에 싸인 인물 중 하나다. 고향인 델프트에서 활동하며 고요한 분위기의 장르 회화로 지역 사회에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지만, 남긴 작품 수가 40점 남짓에 불과했고 그중 상당수는 다른 화가의 작품으로 오인되거나 무기명으로 방치되면서 사후 수백 년 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페르메이르는 19세기 말, 프랑스 언론인 테오필 토레에 의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이스를 뜨는 여성'을 처음 본 테오필 토레는 그 정교한 원근법과 섬세한 빛의 묘사에 깊이 감명받아, 평생에 걸쳐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수집하고 세상에 알리는 데 헌신했다. 그 결과, 페르메이르는 ‘빛의 화가', ‘네덜란드 황금기의 진주'로 재평가되었고, 오늘날에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널리 알려져 전시회마다 세계적 흥행을 이끄는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회화라기보다는 사진처럼 느껴질 만큼 정밀하고 사실적이다. 사실 19세기부터 미술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얀 반 에이크, 한스 홀바인, 벨라스케스 등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이 카메라 옵스큐라나 렌즈 같은 광학 장치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2001년, 영국의 현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와 물리학자 찰스 팔코는 공저 ‘비밀의 지식(Secret Knowledge)'을 통해 이 오랜 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두 사람은 15세기 이후 서양 회화에서 사실주의적 표현이 눈에 띄게 정교해진 배경에는 렌즈, 거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같은 광학 장치 사용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고대 광학 기구로, 외부의 빛이 작은 구멍이나 렌즈를 통해 들어오면 반대편 벽에 상이 뒤집힌 채로 투사된다. 호크니는 페르메이르를 포함한 일부 화가들이 이 투사된 이미지를 트레이싱(tracing, 윤곽을 따라 그리기)함으로써, 이처럼 고도의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레이스를 뜨는 여성'은 페르메이르가 그린 가장 작은 크기의 작품이자 그의 사실주의적 기법이 극대화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화면에는 젊은 여성이 테이블에 앉아 레이스를 짜고 있는 모습이 클로즈업된 구도로 묘사되어 있다. 인물의 손끝과 실은 선명하게, 주변부(배경, 테이블, 인물의 일부)는 살짝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어 마치 렌즈로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 이는 인간의 눈보다 카메라 렌즈의 시각에 가까운 효과이다.

 

호크니 분석이 맞다면, 페르메이르는 천재가 아니라 단순히 광학 장비에 의존해 그림을 베낀 기술자에 불과했던 것일까. 전통적으로, 예술가의 위대함은 ‘직접 손으로 그리는 능력'에 의해 평가되었기 때문에, 호크니의 이론은 “결국 베꼈다는 것이냐”라는 오해를 일으키며 미술계 안팎에서 적지 않은 반발과 비판을 불러왔다.

 

사실 페르메이르가 정말 광학 장치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호크니의 주장에 대해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페르메이르의 작업실에서 광학 장치가 사용되었다는 직접적 증거가 부족하며, 당대 렌즈 기술이나 광량으로는 회화에 실질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대신 그의 정밀한 사실주의는 정통 원근법, 탁월한 관찰력, 색채와 구도에 대한 감각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해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메이르가 렌즈 제작자 안토니 반 레벤후크와 이웃하며 교류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광학 기술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게다가 ‘레이스를 뜨는 여성’을 비롯한 일부 작품에서 중심부는 또렷하고 주변부는 희미한 ‘심도 효과’, 진주와 유리잔의 비현실적으로 정밀한 빛 반사, 광학 장비에서 생기는 왜곡 현상 등이 포착된다. 이런 것들은 페르메이르가 카메라 옵스큐라와 같은 장치를 직접 활용했다는 근거로 볼 수 있다.

 

<김선지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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