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를 더 많이 주는 직장으로 옮기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를 찾지만, 한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직장을 너무 자주 옮기다 보면 퇴직 연금 플랜 401(k) 저축액이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근로자보다 현저하게 낮아진다는 것이다. 미국 최대 펀드 매니징 업체 뱅가드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을 옮기면 연봉은 평균 약 10% 오르지만 401(k) 저축액은 평균 0.7%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낮은 납부율로 시작하는 경향
401(k) 규정 자세한 이해 필요
고용주 기여액 처리 방식 확인
나이에 따른 납부율 조정 등 필요
▲자주 옮길수록 저축액 감소 폭 커
직장을 옮기면 퇴직 연금 저축액이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 옮긴 직장에서 401(k) 플랜에 가입할 때 이전 직장보다 낮은 연간 납부율을 적용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봉 6만 달러를 받는 직장인이 직장을 여덟 번 옮기는 동안 최대 30만 달러에 달하는 401(k) 저축액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을 자주 옮기면 401(k) 저축액이 낮아지는 것은 401(k) 운용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고안된 ‘자동 등록’(Automatic Enrollment)과 ‘자동 인상’(Automatic Escalation) 등의 운용 방식에 영향을 받는 이유도 있다. 뱅가드의 2024년 ‘미국인 저축 방식’(How America Saves)에 따르면, 2023년 401(k)를 운용하는 고용주 중 약 59%가 직원을 퇴직 연금 플랜에 자동 등록했고, 고용주 중 69%는 납부율이 매년 오르는 자동 인상 방식으로 401(k) 플랜을 운용했다.
예를 들어, 최근 대학 졸업생이 첫 직장에서 3%의 연간 납부율로 401(k) 저축을 시작한 뒤, 이후 10년 동안 한 직장에서 매년 1%의 자동 인상률을 적용하면, 30대 초반 납부율은 두 자릿수 비율로 높아진다. 그러나 직장을 옮기면, 연간 납부율이 낮은 비율에서 다시 시작되기 때문에 결국 퇴직 연금 저축액 증가 속도가 한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직장인에 비해 더딜 수밖에 없다.
보고서는 직장인들의 퇴직 연금 저축을 돕기 위해 고안된 기능이 직장을 자주 옮기는 사람들에게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미국 직장인들은 평균 12~13번 직장을 옮기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들 간 퇴직 연금 저축액이 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 낮은 납부율로 다시 시작하기 때문
뱅가드의 보고서에 따르면, 401(k) 가입자 10명 중 6명은 고용주가 설정한 기본 납부율을 그대로 적용받는 ‘수동적’ 저축자들이다. 수동적 저축자 중 약 3분의 2는 직장을 바꾼 후 납부율이 낮아졌고, 특히 이전 직장에서 자동 인상 방식을 적용받았던 저축자의 저축 금액이 가장 많이 감소했다. 보고서 저자 켈리 한 뱅가드 퇴직 연금 조사 부서 책임자는 자동 인상 방식이 저축자 개인의 필요를 반영하지 않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고용주가 설정한 기본 납부율을 그대로 받아들인 뒤 변경을 꺼리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납부율 자동 인상 방식이 많은 직장인들의 수월한 퇴직 준비를 돕는 것은 사실이지만, 401(k) 변경 사항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조정 시기를 놓치는 직장인도 많다. 심지어 납부율을 스스로 정하는 이른바 ‘적극’ 401(k) 저축자들도 직장을 바꾼 후 납부율을 낮추고, 이로 인해 적극 저축자 중 약 57%의 저축액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켈리 한 책임자는 “적극 저축자들은 고용주가 설정한 기본 납부율보다 조금 높은 비율을 선택하지만, 새 직장으로 옮긴 뒤 이전보다 낮은 비율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라며 “이 같은 패턴이 직장을 옮길 때 발생할 수 있으며 결국 저축액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고용주 기여액 처리 방식 확인해야
직장을 바꾸기 전에, 401(k) 플랜 규정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브리검 영 대학교 브리짓 마드리언 경영대 학장은 “직장인들 퇴직 연금 저축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라며 “새 직장의 고용주가 설정한 기본 납부율을 필요에 맞게 변경할 수 있지만 이 같은 규정을 잘 모르는 직장인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직장을 바꾸기 전, 급여 명세서를 통해 현재 적용 받는 401(k) 납부율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데이빗 존 ‘미국은퇴자협회’(AARP) 시니어 정책 어드바이저에 따르면 401(k) 자동 등록 방식을 택한 직장인 중 자신의 납부율이 자동 인상되는 사실을 모르는 직장인이 많다. 따라서 새 직장으로 옮길 계획이라면 현재 401(k) 납부율 자동 인상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또 새 직장으로 옮길 때 이전 직장의 고용주 기여 금액이 어떻게 처리되는 지도 알아봐야 한다. 일부 직장은 직원이 새 직장으로 옮긴 직후 고용주가 그동안 매칭한 금액을 바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일부 직장의 경우 최대 5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
이전 직장 401(k) 저축액이 1,000달러 미만인 경우, 고용주는 직원 동의 없이 저축액을 현금화할 수 있다. 또, 이전 고용주는 직원 퇴직 후에도 해당 직원의 퇴직 저축액을 수년간 보유할 수 있으며, 직원의 통보가 없는 경우 저축액을 고용주가 선택한 은퇴 계좌로 이체할 수도 있다. 마드리언 학장은 “직원이 처리 방식을 정하지 않으면 고용주가 원하는 방식대로 처리된다”라며 “직장을 옮기기 전 고용주 측에 자신의 401(k) 저축 잔액 처리 방식을 확실하게 통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납부율·인상률’ 나이에 따라 조정 필요
401(k) 계획의 개편 여부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401(k) 계좌는 직원이 아닌, 고용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직장인의 저축 모멘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존 미국 연금 시스템에 고용주의 ‘추가 혜택’으로 401(k) 플랜을 제공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고용주가 직원들의 저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소홀할 수 있다는 것이다.
401(k) 자동 등록 방식 역시 직장인들의 퇴직 연금 저축을 ‘반강제적’으로 돕지만 ‘자동’ 기능 때문에 직장을 옮길 때 납부율 확인이나 잔액 이전 절차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직장인이 많다. 데이빗 존 어드바이저는 “직장을 옮겨도 계속해서 변경 없이 이전 가능한 단일 계좌 방식 등이 좋은 해결책”이라고 제안했다. 뱅가드 보고서는 모든 직장인의 기본 납부율을 인상시키거나, 나이에 따른 기본 저축률을 설정하는 방식 등을 제안했다. 이는 나이가 많은 근로자들이 직장을 옮긴 후 저축 속도가 크게 둔화되는 현실을 방지하기 위한 제안이다. 또 고용주들이 퇴직 전에 직원에게 마지막 납부율을 자동으로 통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