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만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유치원생 5세 아이를 둔 박모(40)씨는 지난해 가을, 아이를 나무랐던 일을“지금도 후회한다”고 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그날은 아이가 하원 후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던 때였다. 말을 더듬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갑자기 받은 박씨는 아이에게“다시 말해 보라”고 여러 번 말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말더듬은 사라지지 않았다.“어. 어. 어. 엄마…” 하는 아이의 말에 박씨는 화까지 냈다. 상황은 더욱 악화해 말을 할 때 얼굴을 찡그리는 등의 부수행동까지 나왔다. 그는“아이에게 제대로 말해보라고 재촉하고 부담 준 게 증상을 악화시킨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개그 프로그램의 유희거리로 종종 등장하는 말더듬은 결코 가볍게 볼 언어장애가 아니다. 말더듬이 몰고 올 후폭풍으로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주변으로부터 반복적인 지적을 당하면서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말하기를 꺼리게 돼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신감이 떨어져 원만한 사회생활과도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유승돈 강동경희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말더듬은 부모의 귀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발달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겪는 말더듬이라도 부모의 부정적인 반응을 마주하게 되면 말더듬으로 진행될 수 있어요. 말더듬에 대해 야단을 받은 아동은 이후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다시 말을 더듬게 되고 의사소통 스트레스가 높아질수록 말더듬 빈도도 높아지게 됩니다.”
말더듬은 유전·환경·심리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더듬이 발생하는 시기는 여러 개의 낱말을 섞어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2, 3세 때부터 주로 나타난다. 3세 이전에는 유전적인 영향을 많이 받지만 3세를 전후해선 언어 습득 과정에서 비유창성의 일환으로 말을 더듬을 수 있다.
6세 이후엔 유창하지 않은 말에 대한 주위의 시선 등 환경적 요인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유 교수는 “4세에 말더듬이 나타나는 빈도가 높은 만큼 말더듬 증상이 계속될 경우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말더듬 증상은 여럿이다. “오. 오. 오. 오. 오늘 유치원에 갔다”와 같이 첫음절을 연달아 말하는 반복 현상이 있다. “오~~~~~~~늘 유치원에 갔다”처럼 첫 음절을 길게 늘여 말한다면 연장 현상에 해당한다. 말을 할 때 말소리가 나오지 않아 말을 이어갈 수 없는 막힘 현상도 있다.
말더듬이 계속되면 탈출·회피 행동도 나오게 된다. 말더듬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특정 행동으로 나오는 것으로, 말할 때 얼굴을 찡그리거나(탈출행동), 말을 더듬을 가능성 있는 단어가 있으면 다른 단어로 바꿔 쓰는 식(회피행동)이다. 놀이터를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돌려 말하는 행동 등이 회피행동에 해당한다.
인구의 약 5%가 일시적인 비유창성 또는 말더듬증을 경험한다고 알려졌다. 말더듬을 겪은 후 3~5년 안에 65~80%는 자연적으로 회복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유 교수는 “언어 발달이 큰 폭으로 이뤄지는 3세부터 발음이 완성되는 6세까지 집중 치료하는 게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조기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사춘기 이후가 되면 자연치유가 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특히 남아에게서 나타나는 말더듬이 여아보다 많은 만큼 남아의 부모라면 보다 더 세심한 관찰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2010~2018년 0~19세 말더듬 환자 총 4,534명 중 남자 소아청소년 환자가 전체의 79.1%(3,586명)를 차지했다.
0~9세 소아기로 좁히면 남아 환자(2,684명)가 여아 환자(897명)보다 약 3배 많았다. 여아가 언어 발달과 관련된 측두엽이 활발하게 발달하는 반면 남아는 공간지각, 운동감각 등과 관련한 두정엽이 먼저 발달하면서 이러한 격차가 발생하는 것으로 학계에선 보고 있다.
말더듬 치료는 우선 가정에서 간접 치료를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아이와 대화할 때 말의 속도를 늦추고, 부모가 짧고 단순한 문장을 쓰며 아이가 대답하거나 말하기 수월하도록 도움을 주는 식이다. “오늘 유치원 활동은 재미있었어?”라는 ‘개방형 질문’ 대신, “오늘 유치원에서 한 놀이 중 재밌는 놀이가 뭐였어?”라는 식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질문하면 아이가 보다 수월하게 답을 할 수 있다.
간접치료로 효과가 없다면 직접적인 언어치료를 받아야 한다. 느리게 말하기, 초성을 부드럽게 말하기 등의 훈련을 통해 아동의 언어 유창성을 증진시키는 방식이다. 유 교수는 “말더듬을 갖고 있는 경우 비정상적인 호흡 패턴이 나타나게 된다”며 “말을 더듬을 때 호흡이 빨라지고 막히면서 불규칙한 호흡으로 인해 말더듬 현상이 심해질 수 있는 만큼 발성·호흡 훈련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가족들의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본인의 말더듬에 신경 쓰지 않도록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아동이 스스로 말을 계획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충분히 줘야 합니다. 말이 막힌다고 부모가 말을 대신 해주면 안 돼요.” 부모가 단어의 모음을 약간 연장해 말하거나, 아이랑 대화할 때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어가는 등 어절 간에 여유를 두고 말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