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모세(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레오 톨스토이”(1828~ 1910)의 조언이 우리 삶의 의미를 일깨운다.
삶의 의미와 무엇이 소중한지 지혜롭게 시간을 선용하라는 뜻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
하루하루 일상적인 매 순간의 찰나적인(찰나: 산스크리스트어: Ksana. 1찰나가 75분의 1초에 해당함. 겁)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선물이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세상의 물리적인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 헬라어)라고 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신비의 시간을 카이로스(Kairos: 헬라어)라고 한다.
우리 삶의 제한된 크로노스(차안)에 매달려 살 것인가? 영원한 구원의 시간인 카이로스(피안)에 참여하는 기회의 삶을 기쁨으로 누릴 것인가?
지금 영원을 바라보는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대망하는 열정이 넘치는 순간의 전율에서 오는 새로운 삶의 약속은 어떠한가?
영원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현재의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참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인간다운 진실한 삶의 본이 되는 값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나 지위와 명성을 추구하면서 인간다운 모습을 잃어버린 삭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보면 시간을 어떻게 선용했는가에 따라서 삶의 열매와 평가는 달라진다.
그러면, 시간을 선용하는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미하엘 엔데”(1929~ 1995) 작품 동화 “모모”에 나오는 시간을 훔치는 도둑 회색 신사로부터 삶의 소중한 순간을 잃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있다.
마치 우리의 무의미한 삶의 여유 없는 모습이 아닌가?
삶의 여유를 잃고 일상에 매몰되어 삶의 참 의미와 품위를 잃은 어리석음은 경계해야 하리라.
일상의 무디어지는 감각을 일깨우는 것은 자신의 순수함을 회복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경구와 행복한 시간을 다시 찾아야 할 가족애에 대한 카터 전 대통령의 권면이 늘 새롭게 다가온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절대로 놓치지 말라”라는 충언이다.
마음에 기쁨이 충만한 삶의 소중한 순간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뜻을 마음에 새긴다.
사랑의 언어로 소통하는 친밀한 시간은 안정감과 따뜻함이 넘치는 기쁨 충만한 내면의 풍경이 살아나고 있는 순간이다.
마음이 현재에 머무르는 순간 행복의 절정에 이르는 것은 삶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기쁨이 있어서 가능하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고 미래는 희망으로만 다가오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 미래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다.
미래의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으리라.
쏜살같이 지나가는 귀한 시간을 선용하는 진지한 모습의 창조적인 삶이 큰 기쁨이 되길 원한다. 우리 삶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의미있는 일인지 지혜롭게 분별해야 한다.
히브리어에서 지혜란 삶의 기술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세상의 고난의 삶에서 지혜를 적용하는 훈련이 삶의 참가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리라.
삶의 참가치를 실현하는 지혜는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랑을 베푸는 긍휼의 마음을 말이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것, 타인의 연약한 부분과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해 쏟는 온정은 사랑의 마음이 아닌가.
사랑의 마음을 키우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관점과 이기심을 초월해 타인의 마음과 입장을 헤아리며 사랑의 영역을 확장하는 헌신이 된다.
성숙한 사랑의 실천정신이 귀한 헌신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자신의 평안함 가운데서 이웃의 삶에 대한 무관심과 무정함에서 벗어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위로와 격려로서 용기를 북돋우어 주어야 하리라.
자신의 시간을 선용하는 삶의 신선한 의미와 도전은 풍요로움을 선사하며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