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곡가들의 미완성 작품이 관심을 끄는 예가 없지 않다. 바흐의 작품 중에도 그런 것이 있지만 널리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을 들 수 있겠다. 4악장으로 구성되는 교향곡에 2악장밖에 없기 때문에 ‘미완성 교향곡’으로 불리는 바로 그 곡이다. 슈베르트 사후 3악장은 120마디 정도의 초고가 발견됐다고 하나 4악장으로 나아간 흔적은 없다고 한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남은 3,4악장을 공모하는 경연대회가 열려 당선작을 뽑기도 했고, 다른 작곡가들이 보필한 또 다른 완성본도 있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완성 교향곡’은 듣기 어렵다. 주목받지 못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신 2개 악장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미완성’은 지금도 즐겨 연주되고 있다.
모차르트중에서는 마지막 작품이 된 레퀴엠이 잘 알려진 미완성 곡이다. 이 곡을 작곡하던 중에 모차르트는 사망했다. 레퀴엠은 그가 남긴 스케치를 토대로 후일 그의 제자에 의해 완성됐다. 다른 작곡가들이 완성한 판본도 여럿 된다. 위령미사곡, 진혼곡으로 불리는 레퀴엠 중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지금도 가장 아낌을 받는 곡중 하나다. 장중하고 암울한 아름다움, 평안을 느낄 수 있다는 팬이 적지 않다.
알려진 대로 베토벤은 9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각각 영웅, 운명, 전원, 합창으로 불리는 3,5,6,9번 말고도 제목이 없는 7번과 8번도 남가주의 FM라디오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베토벤 10번 교향곡’은 생소하다. 하지만 유튜브에 들어가면 베토벤 풍으로 웅장하게 연주되는 베토벤 10번도 올라 와 있다.
걸작으로 꼽히는 9번, ‘환희의 송가’를 작곡하면서 베토벤은 10번을 계획했으나 작품의 구상단계에서 타계했다. 후대에는 단편적인 스케치와 일부 초고만 전해졌다. 이를 토대로 베토벤 10번을 만들어 보려는 노력이 여러 차례 시도됐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88년 나온 베리 쿠퍼 버전이다.
2개 악장으로 구성된 베리 쿠퍼 판 베토벤 10번중에서 특히 1악장은 베토벤에 충실한 곡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고 등 비교적 풍성한 자료를 확보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료가 거의 발견되지 않은 2악장부터는 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일 베토벤의 고향인 독일의 본에서 또 다른 버전의 베토벤 10번이 초연됐다. 이 공연이 음악계의 이목을 끈 것은 음악과 과학의 협업 때문이다. 작곡가, 연주자, 학자 등 베토벤 전문가들이 처음 인공지능인 AI의 도움으로 2년여의 공동 작업 끝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AI를 이용한 클래시컬 뮤직 작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에도 바흐 풍으로 하모니를 바꾸는 등의 작업은 성공적으로 이뤄졌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일부 자료를 바탕으로 컴퓨터가 완전히 새로운 베토벤을 창작해 낸 것은 첫 시도였다. AI부터 베토벤을 공부해 그를 익혀야 했다. 컴퓨터의 철저한 베토벤 학습이 선행과제였던 것이다. 쉽지 않았던 이 작업은 미국의 럿거스 대학 팀이 맡았다.
좋은 세상이어서 AI판 베토벤은 이미 짧은 리허설 버전 등이 유튜브에 올라 있다. 인간 판과 인공지능 판 베토벤 10번을 비교해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곧 올 것이다. 둘 다 오리지널 베토벤은 아니지만 짝퉁이라며 폄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또 다른 장중한 베토벤을 느낄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AI 작업을 담당했던 럿거스 대학 교수는 “인공지능이 예술에서 인간의 창의력을 대체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AI는 도구일 뿐”이라며 한껏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베토벤 10번뿐 아니라 11번, 12번도 가능한 일이지 않겠느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