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훈 논설위원
넷플릭스 시청율 전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는 ‘오징어 게임’은 화제작임은 틀림없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엉성하기 그지없다. 이 영화를 보며 우선 드는 생각은 게임 참가자는 천문학적 돈을 벌기 위해 목숨 걸고 참가했다지만 감시요원들은 도대체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이런 감옥 같은 곳에서 사는 감시요원들이 참가자들의 장기를 적출해 밀매하는 일을 한다는 점이다. 주최측의 행태로 봐 이런 일을 하다 걸리면 무사하지 못할 것은 자명하고 실제로 몇명은 걸려 처형된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장기 매매에 나선다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해 번 돈 가지고 무엇을 하겠다는 건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주최 측은 장기매매자를 처형하면서 그 대가로 게임 참가자에게 다음 게임이 뭔지 알려줘 게임의 공정을 해쳤다는 것을 이유로 대는데 이것도 웃기는 이야기다. 주최측은 참가자들이 사기를 쳐 다른 참가자 밥을 빼앗아 먹든, 자는 사람을 몰래 찔러 죽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이렇게 공정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수수방관하다 느닷없이 게임 종류를 미리 알려주는 것은 불공정이라고 관계자들을 죽이다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러나 이런 허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이처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이것이 경쟁자가 죽어야 내가 사는 한국 사회의 처절함을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는 유치원부터 죽을 때까지 편할 날이 거의 없는 사회라고 보면 된다. 그 때부터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살인적인 경쟁이 시작된다. 부모는 부모대로 과외비 대느라 허리가 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마음껏 뛰놀아야 할 어린 시절을 박탈당한채 학원을 전전해야 한다.
전에는 공부만 잘 하면 됐지만 이제는 내신에 스펙이라 불리는 각종 자격증, 수상, 자원 봉사 경력, 논술, 자기 소개서 작성, 인터뷰 요령 등 해야 할 일이 천지 삐까리다. 이게 모두 돈이고 부모 연줄이라 저소득층 자녀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그렇게 좋은 대학 들어가 봐야 이번에는 취직 전쟁이 시작된다. 같은 대학이라도 인문계등 비인기 학과는 취직이 하늘에 별 따기고 인기 학과라도 좋은 학점에 좋은 스펙을 쌓느라 캠퍼스 낭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치가 돼 버렸다.
이 관문을 뚫고 취업하면 장시간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나날이 오르는 아파트 값 때문에 자기 살 집 하나 구하기 힘들고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자기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엄청난 교육비 부담을 져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러다 4,50대가 되면 벌써 명퇴를 준비해야 한다. 퇴직금 가지고는 생활이 안되기 때문에 너도나도 창업을 하는데 그 대표업종이 치킨집이다. ‘한국에서는 전공에 관계없이 누구나 치킨집 사장이 돼 만난다’는 말은 현실이다. 문제는 이런 자영업자 대부분이 망한다는 사실이다.
가뜩이나 인구당 자영업자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데다 최저임금까지 급격히 오르는 바람에 대다수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그 와중에 코로나 사태까지 터져 폐업이 속출중인데도 정부의 자영업자 지원은 너무나 인색하다. 미국은 1인당 GDP 11%, 일본은 16%를 자영업자 지원에 썼지만 한국은 6.9%에 불과하다.
이렇게 하다하다 망한 자영업자 신세가 된 수많은 한국인들이 일용직을 전전하며 우울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 ‘기생충’을 비롯 ‘오징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유독 망한 자영업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져 세계적 히트를 친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은 이럴 때 서글프게 들린다.
‘오징어 게임’과 같이 요즘 화제가 되는 영화에 ‘아수라’라는 것이 있다. 2016년 개봉됐을 때는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인기도 주목도 받지 못했다. 내용은 안남이란 가상 도시의 시장이 폭력배 등과 결탁해 대대적인 부동산 개발 사업을 벌인다는 것인데 요즘 대장동 의혹이 불거지면서 넷플릭스 ‘오늘의 한국 탑 텐 영화’ 2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다다. 하지만 ‘ 오징어 게임’과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등장 인물 모두 목적 달성을 위해서 사람 죽이는 것을 포함해 어떤 도덕적 거리낌도 없다. 두 영화 모두 “강한 편에 붙어라”가 대사에 나오는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한국 영화가 세계적 주목을 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처절한 삶을 살며 윤리 따위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