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은빛 새벽은 어둠을 헹구고
아직 미진도 불허하는
열리는 아침 무대의 맨 앞줄에 앉아
오는 것 오는 모든 것
다 거절하지 않고라도
가는 것 가는 모든 것
다 붙잡지 않고라도
바위처럼 무던하게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팔월의 먹구름이
쏟지 않은 소낙비를 품고
낮게 드리워져 있듯
숨이 턱턱 막히는
젊은 날의 기다림은
비록 나에 취해서
나 자신을 잃어간다 하더라도
오직 일심으로 전념해 볼 일이다.
기다림은 사랑을 잉태하고
또 다른 하나의 삶을 맞이한다.
춥고 외롭던 시절마저도
곱게 펴서 다림질하고
살아있는 날까지
그리고 죽은 몸이 부활하여
다시 죽을 그 날까지
하나의 기다림을 간직하고 싶다.
냇물은 나날이 할 일이 있어.
들과 촌락들을 가로질러 달려간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저 물 같은 묵묵한 유연함의
유일한 사명이 있다면
지금은
그 심지에 귀명할 수 있는
생명의 불을 붙여야 한다.
물가에 나앉은 바위가
흔들리지 않는 일심으로
자신을 다스리며 엎디어 있고
밤이나 낮이나
내 혈관을 꿰뚫고 달리는
그 똑같은 생명의 흐름이
이 물속에서 흘러간다.
생명의 흐름이 흐르고 흘러서
저 침묵의 바다에 닿으면
들과 촌락들 사이로 나부끼는
눈발이 보인다.
서두르지 마라
서두르지 마라
쉬이 머리를 누이는 눈발이다.
막 시작된 겨울의 잠
깨어나면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사명을 위해
묵묵히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이태희>
출생 : 1964년 2월 4일
학력 : 동아대학교 기계공학 학사, 한양대학교 기계공학 석사
활동 : 시작업동인
직업 : 회사원
거주 : 앨라배마 몽고메리
■ 수상소감
오래전 앨범속에 숨어있던 결혼 축하 멜로디 카드를 열어 봤습니다. 전자 멜로디 음이 완전하진 않아도 멜로디 음이 가늘게 흘러 나왔습니다. 이처럼 나에게는 오랫동안 접어 두었던 또 다른 소중함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시 작업입니다. 그 일을 잘 알기에 수상 소식의 기쁨보단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제 다시 내 작업에서 혼을 불어넣고 색동옷 입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입니다. 수상의 영광을 주신 애틀랜타 문학회와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학창시절 함께 고뇌했던 시작업 동인들과 지도해주신 신진, 강은교 교수님께 오늘의 감사를 돌려 드립니다. 오랜 시간동안 시 작업을 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다시 돌이켜봅니다. 옹기장이가 가마에서 구워 낸 옹기의 소리를 들어보고는 아닌 것은 깨어버리듯이 창작한 내 글들이 혼이 없고 살아있질 않아서 지워버리다가 그 상태가 지속되면서 오랜 기간 절필을 해 왔습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창작을 할 수 없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듯합니다. 다시 창작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내 속에서 차고 넘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애틀랜타 신인 문학상이 저에게는 혼이 담긴 옹기를 구워 내는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