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순
오랫동안 즐기시던
아버지의 퉁소 노래 연주
사고당해 시력을 다 잃었어도
손가락 끝에 눈이 달린 듯
대나무를 용케 다듬어
온갖 종류 퉁소를
만들어내던 탁월한 그 솜씨
방 아랫목에서 펼치는
아버지의 퉁소 연주
아름답고 구슬픈 소리 엮어내며
온 집안을 휘감아 울려 퍼지면
하이얀 광목 앞치마 두르고
밥 짓는 올케언니는
퉁소의 음률 따라
친정 소식 그리움에 목이 메이고
옻칠로 붉어진 둥근 상에서
등 굽은 우리 할머니는 콩을 고르다가
애달픈 노랫가락에 한숨을 짓곤 한다
젖살 오른 막내딸은
퉁소 소리 듣고 아버지를 찾아내고
그 소리 들어가며 키가 자랐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
솔모랭이만 돌면
귀에 들리던 아버지의 퉁소 소리에
딸의 입가엔 흥얼거림이 시작되고
긴 세월 추억의 노래가 되었다
먼 이국땅
칠십 고개 넘어
나그네 되어 주름진 막내딸
오늘도 먼 고향 하늘 아래
빈 채로 남아있는 고향 집을 향하는데
어디선가 멀리서 들려오는
손때 묻은 아버지의 퉁소 소리
그리움에 온 밤을 애간장 태운다
이난순 약력
-1948년 충남 청양 출생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
-결혼 후 세 아이의 엄마가 됨
-2014년 4월 미국으로이민(콜로라도 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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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당선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고 기뻤습니다. 시를 쓴다는 마음은 아침에 잠이 깨어 뜨락을 나섰을 때 새벽이슬을 머금은 잔디를 걷는 것. 누구나 살아가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기억하면서 그분들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아버지의 애틋함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이런 영광을 얻을 수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모든 이들의 응모 작품들 중에 유독 저의 ‘아버지의 퉁소’를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직 시를 쓴다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완전히 걸음마 단계인 저에게 ‘시작이 반이다'라고 얘기 해주시는 걸로 알고 마음을 열어 시의 세계에 한 발짝씩 디뎌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콜로라도 덴버에서
이난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