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바람아 불어라·쥬위시 타워 보석줍기 회원)
먼 시돈 사르밧 땅에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잃고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그 남편의 숨결에 아픈 가슴을 쓸어 내리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남편과 함께했던 시간은 바로 어제같이 생생하다. 이른 아침이면 들국화같은 풋풋한 사랑으로 밀가루 퍼내어 빵반죽을 빚는 그녀의 귓속에 “좋은 아침”하며 윙크로 행복의 창을 활짝 열어주던 남편과 다정히 나누던 아침식사의 추억은 이제 휑해진 식탁의 고요 속에 묻혀버리고, 들판에 올라오는 새싹을 보며 우리도 아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속삭이던 남편 어깨에 기대어 벅찬 희망으로 바라보던 석양도 이제는 쓸쓸하기만 하다. 예쁜 꽃을 보면 쓰고있던 모자를 벗어 꽃을 담아 꽃모자를 안겨주던 남편, 여름 날 파도소리 들려오는 백사장에 앉아 밤바다 바라보며 들려주던 노래가 아직도 들리는 듯 하다. 국화 향기 그윽한 가을, 조약돌 위에 낙엽을 태우면 가을이 한 잎 한 잎 모여들어 바스락거리고, 서둘러 양들의 겨울 식량을 곳간에 채우니 한 해가 훌쩍 지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모든 것들이 숨을 죽이고 고요 만이 여인을 지켜본다. 슬픔은 집안을 들락이며 덜커덩 덜커덩거린다. 그런 중에 찾아온 뱃 속의 생명으로 소망이 생겼다. 태중의 아기와 매일 속삭이며 슬픔도 기쁨도 가슴에 품고 시간이 지나니 남편을 꼭 닮은 아들이 그를 대신하여 찾아왔고, 정성을 다해 사랑을 듬뿍 주며 돌보니 슬픔은 멀어지고 희망이 넘쳐 났다. 몇 년이 몇 날처럼 훌쩍 지나가고 온 나라에 흉년과 가뭄이 찾아왔다. 자식처럼 키우던 양들도 하나씩 없어지고 곳간은 텅텅 비어져 간다. 가루 항아리에는 떡 3개면 끝이 나겠고 기름도 겨우 쓸 만큼이다. 그녀는 나뭇가지 주어 마지막 떡을 만들어 아들과 먹고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리라 생각하며 가물어 메마른 대지 위를 서성이며 땔감을 찾는데 웬 낯선 노인네가 물과 떡 하나를 구워달라 한다. 그녀는 먹을 것이 없어 지금 마지막 떡을 먹고 죽으려 하는데 그것마저 구하는 노인의 말에 얼마나 배가 고프면 그럴까하여 먼저 노인에게 대접한다. 그런데 웬일인가! 가루 통에 가루가 기름병에 기름이 퍼내도 퍼내도 여전히 그대로이다.
세월이 흘렀다. 아들이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하더니 그만 숨을 거둔다. 여인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이 다시 찾아왔다. 노인을 찾아가 방성통곡하며 슬픔을 토해내니 노인이 죽은 아이 위에 손을 얹고 하나님께 한참을 기도하는데 아이가 깨어났다. 놀라운 기적과 함께 그 해로 가뭄도 끝이 나고 온 대지에 풍성한 풍년이 찾아왔다. 꿈처럼 걸어온 삶이 혼자가 아니었음을 기억하며 다시 소망의 문을 여는 사르밧 과부의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