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숙명여대 미주총회장)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가을이 되면 국화가 만발한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어 보고싶다. 어느 누가 가을이 되면 ‘국화 옆에서’를 가슴에 담고 살지 않을까-
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할 때 왜 그토록 어려운 영시를 외워야 했었는지 알 수도 없고 힘든 세익스피어 시를 외우느라 내 대학 시절이 어두웠다.
내가 딱 지금도 내 머리에 남아있는 한 구절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의문이다’이다.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 두런 두런 외우며 돌산에 노오랗게 핀 갈 국화가 내 영혼을 맑게 흔든다. 빗속에 흔들리는 노오란 데이지 꽃들이 산을 덮었다.
그 연한 꽃대를 100도가 넘는 바위 틈에 생명으로 살아서 저토록 장엄한 노오란 데이지꽃을 피워내다니---
꽃들아 추운 겨울엔 어디에 내 꽃씨를 숨기었단 말이니- 한톨의 흙도 없는데, 그 꽃씨는 어디서 겨울을 아파했는지---
홀로 겨울을 울어, 울어-- 그 꽃씨들은 긴 겨울을 가슴으로 얼마나 아파했을까-- 시인은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아픔없이 고뇌없이, 하늘 향한 울부짖음 없이 노오란 들국화가 장엄한 꽃동네를 이룰 수 있었을까.
돌산을 덮은 가을 들국화--- 내존재가 새롭게 깨어남을-- 존재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사느라 잃어 버린 ‘나 하나의 나는 누구인가’ 들꽃 한송이도 저토록 장엄한 생명의 꽃을 피우는데 나는 살기위해 빵을 구했고, 내 몸뚱이에 걸친 옷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내 생을 탕진하고 말았다. 온 우주의 빛으로 지구별을 찾아왔다면 내 속에 그 빛은 어디로 갔는가--- 아직 빛나지 않는 영겁의 빛, 아직 꿈꾸지 못한 내가 아직 살아있는가?
아직 꿈꾸지 않는, 영겁의 빛이 흐르게하라. 한송이 들꽃도 생명을 끌어안고 장엄한 빛으로 돌산을 꽃피우는데--- 내 삶은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
수많은 막힌 담을 허물고 ‘지금 이 순간을 살라’ 온 우주의 빛이 스며들도록 내가슴을 열라. 기(=FLOW)가 흐르도록 내 존재에 막힌 담을 허물다-
온 우주의 빛이 스며들도록 마음을 열라, 온 우주의 빛이 스며들어 나의 에고가 아닌 우주와 하나가 된 빛으로 살라. 무한한 그 빛과 하나가 되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잔잔한 기쁨, 나는 살아있다, 지금까지 꿈꾸지 못했던 내 전 존재가 온 우주와 연결된 영혼의 빛이 내게 흘러 들어온다.
바위틈에 핀 노오란 갈 국화가 내 영혼을 일깨우고 밤하늘 별들이 꽃들을 키웠음을-- 원초의 영혼을 키우는 별밭을 본다. 여기 지구별에 사는 즐거움 숲, 강, 풀, 꽃들이 살 수 있는 자연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살충제로, 공기 오염으로 지구별에 꽃들이 살 수 없다면 지구별 인간의 생명도 위기에 직면했음을 알자.
생각하면 문명이 할퀴고 간 지구별은 아프다. 육체의 만족을 위해 돈을 거머쥐고 살기 위해 사람도 길을 잃었다.
19세기 경전 ‘월든’에서 헨리 솔로는 호숫가 오두막을 짓고 자연에 의지하여 살았다. 화전민이 버린 빈 집의 오두막에서 살았던 법정 스님은 문명의 연장에 길이 든 현대인은 편리하다는 것 하나 만으로 너무 많은 것을 빼앗기고 살고 있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그 두메 오두막에 살면서 나는 이 다음생에 태어나도 그 어디에도 소속 되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시라도 한 수 읽으면서 코로나가 마음을 빼앗지 않도록 두런 두런 갈 시를 읊어 본다. 여기저기 눈부시게 갈꽃이 핀 자리에 시 한 수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네가 죽고 내가 산다면---
내가 죽고 네가 산다면 ---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돌산에 핀 들국화에게 물어보라
눈부시게 노오란 꽃들이 피어난 이유를--
우린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노오란 꽃으로 태어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