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 (시인·수필가)
하루가 다르게 낯선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용어인지 외계에서 날아온 것인지 분별이 어려운 말들이 방출되고 있는 와중에 최근 메타버스(metaverse) 란 말이 심심찮게 대두되고 있다. 뜻 모를 말이라서 사전을 열어보았다. 가상, 초월, Meta와 세계, 우주 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반적 측면에서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생활형, 게임형 가상 세계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학자들과 공공기관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2D, 3D라는 표현도, 가상 화폐라는 말도 들어보긴 했지만 가상 공간의 상호작용과 환경에 미치는 실용성이며 가상화폐가 실존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해선 이해가 닿지 못하고 있다. 가상 세계가 인류와 밀접해지고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현실과의 괴리감을 어떻게 감당해야하며 과연 친숙해질 수 있을까. 무섬증이 인다. 가끔은 아나로그로 돌아가고픈, 아직은 아나로그에 심취해있고 싶은 노심이라서 최소한의 디지털에 겨우 적응하고 있는 작금 쯤에서 머물러 주었으면 싶은 심정이다. ‘메타버스’는 또 하나의 사이버 사회를 옹립하듯 현실사회를 따돌려 버리고 나홀로 독주를 감행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정보와 지식을 얻고. 정보와 지식을 발표하고 나눈다. 마트를 방문하지 않고도 일상이 유지되고, 오락을 즐기고, 집안에서 은행거래를 처리한다. 사이버에 매료된 소비자들은 편리하고 저렴하게 최대의 효율적 소비문화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이러한 가상공간 속의 변화를 정부와 기업들은 적절하게 대처해 나가고 있겠지만 가상세계는 급박하게 매우 빠르고 무서운 속도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팬데믹 혼란 속으로 치닫는 동안 ‘메타버스’란 생소한 사이버 산업과 경제가 주도적 위치를 차지해 가고 있었다. 이젠 어쩔 수 없이 현실적 대면으로 형성되는 시장거래에까지 ‘메타버스’가 보완되어야 충분한 효력 발생을 기대할 수 있으리만치 세상은 가상 사이버 세계에 볼모잡힌 모양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기업도 상품과 서비스 제공에 까지도 사이버 공간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미 뒤떨어지게 되는 현상이 유입되고 팬데믹이란 터널을 지나는 동안 소비자 자리에 서게된 고객들의 강요로 만들어진 기현상이 쇄도하고 있다. 산으로 들로 바닷가로 나들이를 가지 않고도 집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고, 악기 연주를 못하는 사람도 연주자가 될 수 있는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러다간 언제쯤일지 그때가 오면 먹거리를 먹지 않고도 일상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아닐까. 가상세계의 성장과 진화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가상세계로 부터 인간이 소외될 날이 올 것이라는 예측도 그리 억측은 아닐 것 같아서이다. 가상공간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사회 문제로 파생되고 청소년 피해는 상상 초월로 가정 붕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보 통신망을 이용한 개인 인권 침해, 직거래 사기, 불법 컨텐츠 침해, 사이버 음란물, 사이버 도박에 이르기까지 명예훼손과 모욕, 스토킹 등 악성 댓글, 허위 사실 유포, 신상정보 침해, 가상공간의 폭력은 끝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첨단과학에 조정당하는 가상세계, 인간의 이성을 조절하는 가상세계의 정처없는 여정은 어디에까지 미칠것인가. 가상과 허구가 교착점을 잃어버리는 넌센스까지 난무할 것 같다. 가상세계 폐해는 기존 온라인 게임과는 달리 일상 생활로 인식하는 중독성 심화 가능성이 높아서 가상세계에 지나치게 몰입하게 되면 일상 현실은 피폐해지고 정체성 장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팬데믹 격리 시한까지 성큼 뛰어넘으며 일상으로 다가온 가상세계는 현실과의 이질감이나 위화감 쯤에는 염두에도 없다는 듯 그 경계가 막연한 애매 모호로 가고있다. 과연 이러한 가상세계의 난립이 인간의 삶에 풍요로움을 더해줄수 있을지, 인간을 어딘지 모를 가상세계로 유리 방치하게 만들지 모를 일이긴 하지만 인간 차등화가 가속될 것은 자명하다. 인류는 더 많은 편리를 구가하고, 소비 문화의 혁신을 요구하느라 자연이 오염되고 급속한 지구 환경변화를 절감하지 못한 결과 온난화 시계는 당겨지고 전례없는 산불, 폭염, 폭우, 가뭄 같은 극한 현상이 수 십년간 잇따를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가 주어졌다. 자연섭리를 간과한채 무한정 발전하는 과학이 두렵다. 유년의 그 날들이 절절이 그리워지는 날이 눈 앞에 선뜻 들어설 것 같은 위기감이 고조되지 않기를 기대하게 된다. 바라건대 메타버스가 아닌 주어진 현실 세계에서 더는 훼손되지 않은 청정자연과 더불어 팬데믹이 마무리된 세상에서 부디 살아지고 싶다. 간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