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서로 좋아하면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 소리가 강물의 끝에서 들린다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만나지 않아도 밤잠이 어렵지 않는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은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하고 싶다. [시인 마종기]
홍콩, 마카오에 가면 그 항구 입구에 불에 타다 남은 앙상한 골격만 남은 교회가 서 있다.
백여 년 전 마카오에는 큰 태풍이 섬 전체를 물바다로 만들고 해일이 일어 바다와 육지를 물바다로 만들고 밤이 되자 암흑 속에서 바다에 떠있는 배들은 방향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해상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아우성이었다.
온 바다가 아수라장이 되어 칠흑같은 밤바다에서는 사람 살려 달라는 고함 소리가 육지까지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그때 언덕 위 교회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던 목사가 들려오는 죽음의 비명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그때 그 목사님은 비장한 각오를하고 성냥을 불로 교회 커튼에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교회가 화염에 타고 인근 바다를 환하게 밝히어 그 불빛을 보고 바다에서 배들이 방향을 찾았고 물에 빠진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지금도 불에 타다 남은 교회의 잔해가 그대로 서있었다. 교회는 영혼의 빛이어야 함을 가슴으로 느끼는 순간 타다남은 기둥을 어루만져보았다. 오늘의 교회가 하늘 높이 솟은 십자가가 타버린 교회 기둥처럼 그렇게 탈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아름답지 않았을까--- 천년을 지었다는 교회는 텅 비어있고 몇 세기가 지난 그날의 모세의 기도를 그리워함은 사랑이 식어버린 오늘 교회의 아픔이 아닐까--
세상은 풍요로운 물질 속에서 진정한 행복은 멀어진 허기진 영혼의 가난, 우린 모두가 외롭고 고독하다. 진실한 사랑의 언어는 신의 손으로 쓰여진 영혼의 빛이다.
에릭 프롬은 그의 ‘사랑의 예술’에서 사랑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은 영혼 깊숙이 서로를 깊이 껴안는 뜨거운 영혼의 사랑의 포옹이라 말한다.
사랑이란 가슴이 열릴 때 깊고 아름다운 사랑의 빛으로 탄다. 어느날 내가 만난 오랜 친구의 얼굴이 사랑의 빛으로 타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을 느껴보았다.
일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조용히 물어보았다. “오늘 하늘을 닮은 사람을 만났네요” 그녀는 웃으면서 “감사하다” 말하면서 마음에 알 수 없는 영혼 깊숙이 ‘사랑의 빛’을 느껴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사라지고 하늘에 기대어 살려고 했는데, 그 빛이 자신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한다.
나의 일상은 변함이 없는데 놀라운 기쁨, 마음의 평화의 새 빛을 찾았다고 그녀의 고백을 듣고 사람의 얼굴 속에 하늘 냄새가 난다는 말을 새삼 느껴보았다.
‘우화의 강’ 은 전설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수런 수런 강물처럼 흘러 우리 가슴으로 흘러 유장한 강물이 되어 사랑으로 흐른다.
삶의 강물이 사랑으로 타면 우리 삶은 거대한 대양이다. 내가슴 열리어 너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며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으로 하나되면 영원한 자유인이 되고 온 우주가 된다. 어느날 파도에게 물었다.
억겁의 세월을 달려 온 파도에게 “파도야! 파도야! 긴긴날 대양을 달려오면서 얼마나 아프니?” 파도가 하는 말이 “나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야”라고-- 사랑은 거대한 대양처럼 파도같은 가슴을 껴안고 무릎을 꿇는 사랑의 헌신이 아닐까 싶다.
종교는 어려울 때 서로 보듬고 이해하는 가슴을 내어주는 사랑의 헌신이다. 우리 서로 보듬고 함께 살 수 있다면 코로나 아픔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자신의 일을 걱정과 애씀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건 생각일뿐, 사람은 실은 서로의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사랑 안에 사는 자는 이생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