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인들의 기대수명이 전년에 비해 1.5년이나 감소했다는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 발표는 충격적이다. 발표에 따르면 2020년 미국인들의 기대수명은 2019년의 78.8세에서 77.3세로 확 줄었다. 이는 2020년 태어난 아이가 2020년과 같은 상황 속에서 평생을 산다면 77.3년을 살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1942~1943년 기대수명이 2.9년 감소한 이후 가장 큰 연간 감소폭이다.
물론 기대수명이 이처럼 크게 감소한데는 팬데믹의 영향이 가장 컸다. 팬데믹으로 인한 미국인 사망자는 60만 명을 넘어선 상태이다. 기대수명 감소 원인들 가운데 팬데믹이 차지한 비중은 74% 정도로 추정된다. 이밖에 오피오이드 같은 약물 과다복용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장 앞선 선진국임을 자랑하는 미국인들의 기대수명이 가장 앞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전혀 새롭지 않은 사실이다. 2018년 유엔 인구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기대수명은 78.25년으로 세계 48위 수준이다. 대한민국은 이보다 무려 5세 이상이나 많은 83.31세로 일본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3년 전 의학저널 랜싯은 2030년 태어나는 아이의 기대수명이 90살이 되는 나라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21세기 안에는 기대수명 90을 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었다. 하지만 랜싯은 2030년 이것을 깨는 나라가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여성들이다. 2030년 태어나는 한국의 여아는 91세를 살 것으로 기대된다고 랜싯은 예측했다.
이 전망이 놀라운 것은 불과 반세기 사이의 대역전 때문이다. 1960년대만 해도 한국의 기대수명은 채 60이 되지 않았다. 이미 70세에 이르고 있던 미국과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경제와 의료체계의 발전에 힘입어 격차는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드디어 2003년 한국의 기대수명은 77.25세를 기록하면서 미국(77.04세)을 넘어섰다.
이후 기대수명 현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한국은 꾸준히 늘고 있는 반면 미국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미국의 의료비 지출 현황에 비춰볼 때 이 같은 현실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2016년 현재 GDP 대비 보건의료비 지출비율을 보면 미국은 17.8%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많다.
그런데도 이들 국가들에 비해 기대수명은 낮고 영아사망률은 훨씬 높다. 의료비 지출이 적어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다. 천문학적인 보건의료비가 건강을 증진하거나 수명을 늘려주는 데 제대로 쓰이고 있지 않다는 말이 된다.
미국의 보건의료비를 분석한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원의 이렌느 파파니콜라스 교수는 “미국은 의료기기 이용료와 의료진 봉급, 행정비용 등 거의 모든 게 훨씬 비싸고 비효율적인데다 불필요한 촬영이나 수술 등이 너무 많다”고 진단했다. 같은 약이라도 미국에서는 두 배 이상 비싸다.
팬데믹으로 인한 기대수명 손실은 코로나19가 통제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게 것이다. 지난 1918년 플루 팬데믹으로 미국인들의 기대수명이 무려 11.8년이나 줄었지만 곧 회복된 경험도 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1918년만큼 회복이 빠를지는 지켜봐야 한다. 불확실한 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설사 기대수명이 다시 회복된다 해도 다른 나라들의 기대수명에 근접해 가는 일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의료비 사용,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확인된 나쁜 정치의 문제점 등 시스템의 개선과 개혁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기대수명 증가는 기대난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