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학교에 학생 하나가 성적이 불량해서 그 아버지와 함께 학교에 불려왔습니다. 그 선생님과 성적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아버지가 문득 그 선생님에게 묻기를 선생님은 마침 역사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선생님. 선생님이 가르치고 있는 과목에 대해서 우리 아들 점수가 어떻게 나와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제 다시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반문하기를 “아버님은 옛날 학교 다니실 때 역사 점수가 어땠습니까?” 그러자 그 아버지가 머리를 긁으시며 “저야 형편이 없었죠.” 그러자 선생님이 말씀 하시기를 “역사는 반복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답니다.
우리가 역사에 대해 접근할 때 기독교인의 역사에 대한 관점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관점은 몇 가지 근원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적어도 역사 이해에 대한 기독교적인 관점과 불신앙의 사람들의 관점은 세 가지 정도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차이를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역사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주저함 없이 그것은 인간이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인간이 역사를 꾸미고 형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알고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뜬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우리에게 이런 고백이 서슴지 않고 고백될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역사의 표면적인 무대 위에는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또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의 무대 저 뒤편, 이 무대의 배후에서는 누가 이 역사를 주장하고 섭리하고 있는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 역사 속에서 어떤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동기, 그 사건의 의미, 그 사건의 방향을 하나님이 주장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책 가운데서도 한번도 하나님이란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때때로 이 책에 대해서는 성경의 정경성이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에스더입니다. 또 에스더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용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 관심을 가지고 에스더에 나타난 역사의 구성과 그 드라마를 조심스럽게 살펴 보시면 이 사건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틀림없이 고백하실 수가 있습니다.
하만과 모르드개의 배후에서, 에스더라는 여인의 배후에서 하나님이 그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놀랍게도 간섭하시고 있는 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하나님이란 단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이 책을 볼 때 하나님의 손을 보며 하나님의 눈을 마주칠 수가 있습니다.
역사가들의 일반적인 역사 기술 방법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사건만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왜 발생했는가? 이 사건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누가 역사를 주장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연히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의 메시지 안에는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필연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인정하고 따를 때 우리의 삶 속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