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의 솔들이 비에 젖었다솔 등에 기대면 --
내 마음이라도 아는듯
'그대는 삶을 잘살고있는가'
옛 선비의 그 한마디가
가슴 때린다
진정으로 살고 있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침묵의 성자처럼
그렇게 무심히 서 있는 줄 알았는데
내 가슴 내리치는 우뢰같은
그 음성 , 옛 선비의 한마디
'그대는 삶을 잘 살고 있는가'
그 맑음, 맑은 정신이
내 영혼에 스며들어
오늘은 내 영혼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함석헌님의 시 ‘그대는 그 한사람을 가졌는가’그 시는 내게는 솔 한그루의 영혼일 수 있다며 가슴에 담아본다.
‘만리 길 떠나는 날 너 하나 남아 있으니’ 하며 눈시울 적시울 그 한사람이 그리운 날 아닌가.
돌산 기슭을 산책하면서 호숫가에 파도에 씻겨 뿌리가 반쯤 물에 잠긴 솔 한그루를 옆에 있는 단풍나무가 그 솔을 껴안고 살고있다. 그 솔옆 바위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십수년이 지나도 죽어가는 솔을 살려 낸 그 단풍나무가 내겐 왜 은인같은 존재일까--
거목의 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자신의 가지를 드물게 솎아낸 단풍 나무의 지혜, 난 왜 그 나무들앞에 서면 내가 사람임이 부끄러운 걸까.
45년 만에 돌아온 선물---.
어느 날 어느 사모님이 나에게 액자하나를 건네주셨다. 그 액자는 코코넛 나무에 조각된 야자수 나무와 원주민 오두막이었다.
지난해 남편과 함께 아메리칸 사모아 작은 교회에 초대 되었을 때, 그곳에 사는 중년 남자가 나에게 전해 달라는 작은 편액이었다고 하셨다.
내 나이 스물아홉, 1977년 외교관 남편의 직장이 하와이를 중심으로 수산업 기지를 돌보는 일이었다.
조국이 가난하던 시절 보릿고개 허기진 배를 채우기위해 스무살 갓넘은 선원들이 참치잡이로 일하던 남태평양.
그때 만난 선원이 잊지 않고 보낸 야자수 그늘, 원주민 오두막이었다. 반 세기를 지난 후 청춘의 때묻지 않은 남태평양의 파도 소리가 가슴 때린다.
거대한 대양 위에 사마귀처럼 작은 섬 파고, 파고 그항구 -- 태고의 바람소리, 억겁의 세월을 달려 온 파도가 작은 모래섬에 부서지고, 라바, 라바만 걸친 원주민들 -- 사방이 망고, 바나나 , 우루, 따루 일하지 않아도 굶어 죽을 일 없는 지상의 천국이었다. 돗자리가 돈이라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헐벗은 가난 때문에 찾아온 우리 선원들--- 적도의 열기에 피부가 흑인처럼 타 버린 내 조국의 젊음들을 집채같은 파도에 수없이 수장하고 돌아왔다.
세월속에 돌아온 그 작은 나무 액자는 내 젊은 날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편액이었다. 내 인생에 가장 맑고 아름다운 선물은 남태평양이었다.
그 하늘빛, 물빛, 맑디 맑은 공기 오염 0도 , 그 태고의 섬은 내 영혼이 목마른 날 맑은 영혼의 모음이다.
배 고픈 조국을 위해 망망대해에서 태평양의 파도에 몸을 묻고 돌아오지 못한 젊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가슴이 아린다.
파도가 울부짖는 남태평양 어느 해변에는 지금도 그때 혼을 묻은 우리 선원 묘지가 한으로 남아있다.
남태평양 선원묘지(시- 김경자) 끼욱! 끼욱! 고향 그리는 물새 한마리/ 한을 우는 영혼은 고국하늘 나는데/오늘도 그날처럼 파도는 울고/해풍에 씻긴 비석하나/ 열 아홉 000/
낮선 땅 파도에 잠든 넋이여/ 열아홉살 보릿 고개/ 가난이 한이 되어 원양어선 선원 되어/ 그 눈물의 이별/ 너를 보낸 조국은 너무 잔인해/
성난 파도 하늘을 울고/ 너 하나를 삼키고 만 태평양 성난 파도/ 물새 한마리 고향 하늘 날으네/ 그리움, 못내 파도에 울고/
남 태평양 성난 파도에 널 묻고 말았다/열아홉 내 조국의 아들들이여/ 이제는 눈물도 가난도 없는 / 그 하늘 나라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