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경동나비

[권정희의 세상읽기] 결혼 75주년의 축복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07-09 10:10:44

권정희 논설위원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던 1946년. 7월의 첫 일요일인 7일, 조지아 주 한 시골마을의 조그만 교회당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해군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21살의 신랑과 초급대학을 마친 18살의 신부가 결혼서약을 하고 생의 행진을 시작했다. 사랑에 빠진 신랑신부는 행복했고, 가족친지들은 풋풋한 신혼부부의 앞날을 축복했다.

 

하지만 당시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은 그 행진이 얼마나 풍성한 성취를 이뤄낼지,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였다. 행진은 30년 후 백악관에 이르고, 이후 노벨평화상 시상식장으로 이어졌으며, 가난과 질병 인권탄압으로 고통 받는 세계 각처로 이어졌다. 행진은 75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미 카터(96) 전 대통령과 로잘린(93) 여사가 7일 결혼 75주년을 맞았다. 미국의 역대 전직 대통령 45명 중 최장수 기록에 더해 최장기 결혼 기록까지 세우면서 카터는 2개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부부는 조용하게 기념일을 맞은 후 주말에 모교인 플레인스 고등학교에서 가족친지 수백명과 함께 성대한 축하파티를 갖는다.

 

‘결혼 75주년’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찍 결혼하고, 이혼하지 않으며, 부부가 같이 장수해야 가능한 특별한 행운이다.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는 해리 트루먼, 제럴드 포드,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등 7명이 결혼 50주년을 맞았다. 카터부부 못지않게 금슬이 좋았던 조지 H.W. 부시부부는 바버라 여사가 2018년 세상을 떠나면서 결혼 73주년으로 막을 내려야 했다. 보다 젊은 세대인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는 우선 나이가 75세가 안되었다.

 

같은 사람과 75년을 ‘행복하게’ 사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결혼 10주년쯤 되면서 권태기에 빠진 젊은 부부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벌써 지겨운데, 지금도 이렇게 많이 싸우는데, 어떻게 수십 년을 더 같이 살까 싶은 부부들이 많을 것이다.

 

금슬 좋은 부부들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날이 갈수록 상대방을 더 사랑하게 된다고 말한다. 열정적 사랑으로 결혼해도 매일 대하다보면 소 닭 보듯 무덤덤해지는 게 보통이고, 하도 부딪혀서 상대방을 보면 화부터 치밀어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들은 무엇이 다른 걸까. 이들은 배우자가 인생 최고의 가치라고 믿는다.

 

결혼 75주년을 맞아 미디어들이 카터 부부를 인터뷰했다. 행복한 결혼 비결을 묻는 질문에 카터는 전에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대통령도 되어보고 노벨상도 수상했지만 “내 인생의 최고봉은 로잘린과 결혼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아버지 부시도 생전에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이 세상 최정상에 올랐다고 하겠지만, 그건 바버라의 남편이 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행복한 결혼의 첫째 비결로 카터는 자신에게 딱 맞는 배우자를 꼽는다. 천생연분을 만나라는 것인데, 아마도 그런 인연은 첫눈에 알아보는 모양이다. 17살의 부시는 16살의 바버라를 크리스마스 댄스파티에서 보고는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 카터는 로잘린과 첫 데이트 후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내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라고.

 

그리고 나면 결혼생활 내내 필요한 것은 ‘완전한 동반관계’라고 로잘린 여사는 말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대등한 파트너 관계가 저절로 형성되지는 않는다. 모든 남성은 저도 모르게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카터 부부에게도 ‘사건’이 없지 않았다. 가장 큰 ‘대형사고’는 해군장교였던 그의 제대 결정. 결혼 초기 부친의 사망소식을 접한 카터는 가업을 잇기 위해 제대를 하고 고향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런 큰 결정을 내리면서 아내와 한마디 의논이 없었으니 불화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이후 부부는 땅콩농장 사업을 같이 하면서 동반관계를 만들어갔고, 정계에 진출하면서 완벽한 파트너가 되었다. 백악관에서 카터가 가장 신뢰한 정치 조언자는 로잘린이었다.

 

결혼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는 일이다. ‘네모’와 ‘세모’가 만나 하나가 되려니 부딪침은 당연하다. 모서리가 깨져 나가기도 하고 완전히 갈라지기도 한다. 성공적 결혼이란 각자의 모서리가 부드럽게 마모돼 둥글게 닮아가는 것. 끊임없는 화해와 소통은 필수라고 카터부부는 말한다. 지금도 매일 밤 부부는 낮 동안의 다툼/이견을 해소하고 나서야 잠을 잔다.

 

아울러 ‘같이 또 따로’ 사는 생활방식이 부부의 행복 비결.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한편 공통의 취미를 찾아 함께 하는 것이다. 부부는 스키, 들새관찰, 제물낚시를 즐긴다.

 

그렇게 부부는 75년을 같이 살았다. 연로해 거동이 제한되니 부부는 더욱 살갑게 의지하며 그윽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이 특별한 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부부는 분명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것이다. 이 부부가 사는 법을 모두 따라해 보면 좋겠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미국 거주 기간과 메디케어 혜택 자격

최선호 보험전문인 어떤 배짱 두둑한 사람이 죽어 가고 있었는데 저승사자가 찾아 왔다. 이 사람은 넉살 좋게도 저승사자에게 부탁이 하나 있다고 했다. 기가 찬 저승사자는 부탁이 뭐냐

[내 마음의 시] 생명의 은인
[내 마음의 시] 생명의 은인

박달 강 희종 (애틀란타문학회 총무) 사랑해요 여인같은아카시아 나무 전에는붉은 장미 속에서 선물을 넘치게  백합 꽃 향기진주 목걸이다이아몬드 반지 강물같은 그대호수같은  세월동안 

[애틀랜타 칼럼]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 의미

이용희 목사 추수감사절은(Thanksgiving Day)은 1년 동안 추수한 것에 대해 가을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개신교(기독교)의 기념일이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법률칼럼] 트럼프의 대량 추방대상

케빈 김 법무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그의 이민법 집행 계획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벌레박사 칼럼] 카펫 비틀 벌레 퇴치법

벌레박사 썬박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카펫이 깔려 있다. 카펫에서 나오는 벌레 중 많은 질문을 하는 벌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카펫 비틀(Carpet Beetle) 이다. 카펫

[행복한 아침] 자연의 가을, 생의 가을

김정자(시인·수필가)                                       단풍 여행을 떠나자는 권면을 받곤 했는데 어느 새 깊은 가을 속으로 들어섰다. 애틀랜타 가

[삶과 생각] 청춘 회억(回憶)

가을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 생각 중에서도 인생의 가장 치열한 시간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인 것 같다. 입시를 앞 둔 몇 달, 마지막 정리를 하며 분초를 아끼며 집중했던

[데스크의 창] ‘멕시칸 없는 하루’ 현실화될까?

#지난 2004년 개봉한 ‘멕시칸 없는 하루(A Day Without a Mexican)’는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한 날 멕시칸이 일시에 사라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상적인 혼란을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와 해리스가 연일 박빙의 구도를 보였으나 결과는 이를 비웃는 듯 트럼프가 압승을 거두어 모

[뉴스칼럼] 유튜브 채널의 아동착취

가족을 소재로 한 유튜브 콘텐츠가 적지 않다. 주로 부부가 주인공이다. 유튜브 부부는 경제적으로는 동업 관계다. 함께 제작하거나 동영상 촬영에 협력하면서 돈을 번다. 유튜브 채널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