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국(Richard E Kim)의 영문 소설 순교자(The Martyred)는 1964년 미국에서 발표되어 뉴욕 타임스의 격찬을 받고 한국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어 이듬해 영화화한 문학 작품이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고 있다.
전쟁의 비극적 상황에서 인간의 고난과 실존의 문제와 기독교 진리와 위선의 문제, 인간 영혼의 갈등과 고뇌를 실존주의적 입장에서 예리하게 다루고 있다.
6. 25 한국 전쟁 직전 북한의 평양에서 14명의 목사가 공산당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해 10월 유엔군과 함께 육군은 평양을 점령했다.
육군 정보국의 정보에 의하면 12명의 목사는 북한의 정치보위부에 의하여 총살당해 순교했고 신 목사와 젊은 한 목사는 제외되어 살아남았다.
정보장교 이 대위가 조사한 실체적인 진실은 12명의 목사는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배교자가 되었으며 한 목사는 두려움에 의지력을 잃고 총살 직전 정신 분열을 일으켜 제외되었다.
신 목사만이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용기와 의연한 태도에 총살 집행관은 감동하여 신 목사를 살아남을 수 있게 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의 고결한 영혼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전쟁의 고통 속에서 절망 상태에 있는 무기력한 인간의 존재와 신의 침묵에 대한 인간의 회의적인 신앙의 갈등이 작품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 실존의 문제와 신을 향한 구원을 갈망하는 연약한 모습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을 보여주고 있다.
12명의 목사 중에 원로 박 목사는 이 대위의 친구인 해병대 박 대위의 부친이었다.
박 목사는 자신의 광신적인 신앙 때문에 자식과도 의절한 상태였었다.
박 목사의 영적인 교만이 부자간의, 사랑의 관계를 해치고 있었다.
신 목사를 통해서 밝혀진 사실은 박 목사가 처형 직전에 ‘일 분간 신을 향해 기도할 시간을 주겠다’라는 정치보위부 정 소좌의 말에 ‘난 기도할 수 없어!’라고 연약한 본성을 드러낸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결핍이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없게 했다.
그가 무너지는 순간 영적 보호자였던 젊은 한 목사도 함께 무너졌다.
기도는 고통 가운데서도 자신의 나약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라보며 신뢰하는 모습을 지니는 것이 아닌가?
박 대위는 아버지가 극한적인 상황에서 인간적인 허약한 모습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은 것에 대해 오히려 한없이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의에 충실했던 광신자의 모습에서 인간다움을 회복한 아버지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 부자간의 단절 되었던 관계가 치유되는 사랑의 회복을 뜻하는 것이리라.
박 대위는 추도 예배 때 그동안 아버지의 신앙관에 감정적으로 저항했던 모습에서 욥의 긍정에 도달하게 된다. (욥기 42:1- 6)
이 작품의 힘 있는 문체와 간결함, 이지적이고 냉철한 문장에 깃든 정열과 사랑, 휴머니즘의 정신이 전편에 흐르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고결한 영혼과 마음을 울리는 열정적인 모습과 신앙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기도의 능력으로 참된 양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진실을 위태롭게 할 수는 없다”라는 이 대위의 가치관이 담긴 메시지가 깊은 공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대위의 순수한 정신과 진실을 수호하는 성실성은 맹목적인 신앙을 요구하는 광신적인 신자들의 빗나간 열정과 신앙의 위선을 꿰뚫어 보는 장 대령의 관점이 충돌하게 된다.
장 대령이 순교한 12명의 목사를 위한 추도 예배를 지원하겠다는 뜻은 공산주의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알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이 대위는 실체적인 진실을 왜곡하지 말고 제대로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신 목사는 12명의 목사가 박해를 받았던 순교자이며 살아남은 자신은 죄인임을 고백한다.
이에 교인들은 신 목사의 고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이없게도 “유다야! 유다야! 회개하라"고 신 목사를 향해, 돌팔매질해대며 서슴없이 폭력성향을 드러낸다.
신앙인의 선과 악의 판단의 기준이 자의적이며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모습인가?
자신의 신앙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맹신을 간과하는 어리석음이 아닐까?
순교한 목사와 교회를 위해서도 신자들의 환상을 깨트릴 수 없다는 신 목사의 신앙관에 이 대위는 진실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양심의 문제를 계속 소신으로 여긴다.
이 대위! “인간을 사랑하시오. 그들을 도와주시오. 절망과 싸우고 언젠가는 죽기 마련인 인간을 불쌍하게 여길 용기와 십자가를 간직하시오.”
신 목사의 사랑의 마음이 담긴 절절한 호소이다.
중공군 개입으로 1월 4일 평양을 철수하는 과정에서 이 대위는 신 목사와 함께 서울로 떠나길 원했으나 신 목사는 병든 노약자들과 아녀자들을 위해 남아서 그들을 돌보고 기도하길 원한다. 신자들을 위한 희망의 보루가 되길 원하는 사랑의 마음이다.
그 후 신 목사는 평양에서 공개 처형을 당하고 장 대령은 북한의 지하에서 활동하다가 전사한다. 고 군목은 옛 교회 신도들의 도움으로 북한을 탈출해 남해의 작은 섬에서 교회를 세운다.
이 대위는 천막촌 교회에 참석해 피난민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일체감을 느낀다.
박 대위는 영천 전투에서 부상으로 병원에 후송되어 혼수상태에 있다가 이 대위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박 대위가 남긴 메모의 내용은 이러했다.
나는 ‘역사의 벼랑 끝에 매달려 왔지만 이젠 포기했네. 떠날 준비가 됐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