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면 밀레 만종 화폭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침대 오른 편에 창이 있고 창 옆엔 밀레의 만종 캔버스가 10호 사이즈로 자리잡고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풍경으로 족히 스무해는 훌쩍 넘긴 것 같다. 유치원 교실 벽에 걸린 밀레의 만종이 어린 아이의 눈에 평안을 심어주었던 기억을 시작으로 간간이 만나지는 밀레의 그림들이 평화의 상징처럼 자리잡고 있다.
장프랑수아 밀레는 가난한 농부 아들로 태어나 생애 동안 농민 화가로, 일하는 농부들을 소제로 삼으며 전원 정경을 주로 그렸다, 가난에 쪼들렸으나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농민의 모습을 종교적인 분위기로 심화시켜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해냈다.
이삭 줍는 여인들, 씨 뿌리는 사람, 감자를 수확하는 농부,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 양차기 소녀와 양떼들, 추수하는 사람들, 숲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양치기, 감자를 심는 사람들, 등 농부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반다이크’는 말레의 만종을 ‘사랑과 노동과 신앙을 그린 인생의 성화’ 라고 했다.
1857년 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농부 부부가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숙인채 기도를 드리고 있다. 신성한 노동 후의 고요한 정적과 평화가 있다. 캐고있던 감자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교회당이 정지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작품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 조차 없는 가난한 화가에 불과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데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 프랑을 지원받게 되면서 만종이란 그림이 탄생하게 것이다.
이후로 만종은 아메리카 미술협회에 팔렸고, 프랑스 국회와 행정부는 물론 모금활동까지 벌여가며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무산될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무렵 백화점 재벌 ‘알프르드 쇼사르’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만종을 다시 미국으로 부터 사들인 것이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하므로 만종은 프랑스의 자랑이요 자존심을 지켜주며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되었다.
밀레의 그림들은 평온과 고요함을 마음에 새겨주고 있다. 사랑과 평화가 있고 소박함과 우직스러울 만큼 바르고 거짓없는 정직이 스며있다. 아침마다 만종을 대해도 변함없는 경건과 진실과 삶의 진솔한 풍요와 행복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다.
밀레는 시대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세를 탄 화가는 아니었다. 동네분들이 푼푼이 모아준 정성을 노자로 삼고 파리에 가서 그림공부를 하였지만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하며 그림을 그려왔다.
밀레의 그림 속에는 인생살이가 시가 되어 흐르고 인생사의 진실한 면모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그림 속에 흐르는 테마마다 공통적 진실성으로 삶의 진실한 저변을 보여주는 소박한 성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종은 삶에 대한 관념의 은유를 표현하고 있다. 만종의 화폭 앞에 서 있노라면 잔잔한 여운이 번지는 종소리를 들려주곤 한다. 종소리가 들릴때면 자신을 잘 돌보아 주자고 다짐을 하게된다. 은은한 종소리로 하여 마음의 평정을 얻게되고 이런저런 상처까지 치유 받을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된다. 살아온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수시로 다가오는 난제들도 지나고 보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왔는지가 또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시야가 열려지는 것이라서 마음에 지워진 무게감을 잘 견디었구나 나를 어루만져주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만종과 마주하고 있으면 그리운 고향이 떠오르고 정겨웠던 기억들로 가득 채워진 그런 하루들이기를 간절히 기도드리게 된다. 긴 하루 농사 일을 끝낸 부부의 숙연한 기도는 참되고 순결한 행복을 보여주며 사랑과 고된 노동과 신앙의 결집만이 인생들이 진정한 행복에 잠길 수 있음을 첨예하게 설파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 쯤은 은은한 그리움으로 떠올려지는 정겨웠던 삶의 순간들을 기억할 시간을 마련해 보라한다.
하루를 다한 감사를 놓치지 않으며 만종의 은은한 종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삶으로 다듬어가자고, 그 길이 축복의 길이요 행복으로 들어서는 지름길이라는 타이름을 듣는다. 사는 게 다 그런거라고 슬기로운 삶이었다고 착각할 때도 더러 있긴 했었지만 세월이 어찌 이리 빠른걸가. 하루하루들은 갈수록 빈 자리만 남기는 것 같아 당황하는 사이 어제 일도 까마득 옛날이 되어버린다.
살아있다는 게 별게 아니라고 중얼거리기도 하지만 나를 인정해주고 싶다. 나이 탓이겠다 싶기도 하지만 나만의 인생으로 내가 원하는 색채로 채색하고 싶어진다. 습관적 삶이 아닌 뚜렷한 선을 긋고 싶다. 만종의 농부처럼.